보천보전투, 누구의 작품인가 [주성하 기자의 서울과 평양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3일 03시 00분


북한이 보천보에 만들어 김일성신화 교육에 활용하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북한이 보천보에 만들어 김일성신화 교육에 활용하는 ‘보천보전투승리기념탑’. 사진 출처 우리민족끼리
주성하 기자
주성하 기자
6월 4일은 북한의 ‘보천보전투 승리기념일’이다. 북한은 보천보전투를 ‘김일성이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첫 조국진공작전이며, 조선의 정신을 깨운 사건’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김일성이 보천보전투 현장에 있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자료가 잇따라 공개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일부는 70년 넘게 역사 속에 묻혀 있던 보천보전투 실제 지휘관의 이름까지 거론하고 있다. 특히 조선족 출신 유순호 작가가 최근 완성한 ‘김일성평전(상·중·하)’은 보천보전투와 관련해 그동안 중국이 북한을 의식해 공개하지 않았던 동북 항일 운동 관련 비밀 자료들을 담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평전에 실린 자료는 1958년경 중국이 당시 생존해 있던 동북 항일열사들의 증언 등을 모아 만든 것이다. 이때 중국은 김일성과 관련이 있는 내용은 모두 비공개로 숨겼다. 김일성 신격화에 공을 들이던 북한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였을 것이다. 유 작가는 이런 자료들을 30년 이상의 시간을 들여 수집했고, 책을 완성했다.

평전에는 북한의 주장과 상반된 얘기들이 적잖은데 보천보전투 관련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유 작가는 1937년 6월 4일 발생한 보천보전투의 실제 지휘관은 김일성이 아니라 왕작주(王作舟) 동북항일연군 2군 6사 참모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군 6사는 1930년대 후반 김일성이 지휘한 부대였다.

중국인인 왕작주는 김일성 부대 참모장으로서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량 같은 존재였다. 길림군관학교 졸업생인 왕작주는 열정만 앞세울 뿐 병법은 전혀 몰랐던 김일성을 대신해 주요 전투 대부분을 지휘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동안 중국과 북한은 왕작주라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적잖은 공을 들였다. 가장 큰 공을 세웠기 때문에 가장 깊숙이 묻힌 셈이다. 북한이 기록한 항일투쟁사 어디에도 김일성 부대 참모장에 대한 기록은 없다.

유 작가에 따르면 1937년 5월 백두산 인근 베개봉 지역에 진출한 최현 부대가 일본군에 포위되자 왕작주는 베개봉과 적의 거점인 혜산의 중간 지점인 보천보를 공격해 포위망을 푼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는 자신이 지휘하고 있던 6사 소속 7퇀(연대) 4중대(중대장 오중흡) 70여 명, 8퇀 1중대(중대장 무량본·武良本) 30여 명, 기관총소대(소대장 이동학) 10여 명, 여성중대(중대장 박녹금) 10여 명 등 총 130여 명을 거느리고 보천보를 공격했다. 당시 항일연군은 지휘관과 참모장이 각각의 친솔부대를 거느리고 움직이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들도 있다. 보천보전투 때 경찰서 습격을 맡았던 중국인 항일열사 무량본과 6사 9퇀장 마덕전의 회고담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에 따르면 보천보전투의 현장 지휘는 왕작주가 했고, 김일성은 다른 곳에서 작전을 벌이다가 보천보전투 발생 다음 날인 1937년 6월 5일 압록강 건너편 23도구에서 왕작주 부대와 합세했다.

김일성이 소련에 들어가 1942년에 직접 쓴 ‘항련 제1로군 약사’에는 보천보전투가 언급돼 있지 않다. 자신이 한 일도 아닌 데다 별로 대단한 전투라고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천보전투에 의미를 두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후반부터다.

왕작주는 1940년 전사했다. 유 작가와 면담한 왕작주의 외손녀는 “생전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이가 김일성이었다’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전투 중 중상을 입은 왕작주가 의식을 잃고 체포돼 이송될 때 김일성이 나타나 그가 변절한 것으로 오해하고 총을 쐈다고 한다.

보천보전투는 1937년 6월 5일 동아일보의 특종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일제의 정보 통제가 엄혹했던 시기였지만 습격 상황과 피해 대상 등을 매우 자세하고 정확하게 소개했다. 다만 보천보전투가 김일성 부대의 작전이었다는 점만 밝히고, 누가 전투를 현장 지휘했는지는 다루지 않았다. 당시로선 그런 내용까지 파악하기란 쉽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 북한은 보천보전투를 김일성의 최대 업적 가운데 하나로 내세우며 북한 주민들에게 김일성 신격화를 세뇌시켜 왔다. 유 작가의 저서가 공개되고, 보천보전투가 김일성 부대의 참모장 왕작주가 지휘한 작전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북한 사람들에겐 적잖은 충격이 될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보천보전투#김일성 신격화#김일성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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