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첫 주말이었던 1일(현지 시간) 미국 워싱턴 라파예트 공원. 이른 아침 백악관 전경이 바라보이는 공원 잔디밭에서 만난 매트 케네디 씨와 그의 친구들은 커다랗게 ‘베토(BETO)’라는 글이 쓰인 티셔츠를 입거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이들은 2020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의 베토 오로크 후보를 지지하며 선거운동에 나선 자원봉사자들이다.
“오로크 후보가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의원에 도전할 때부터 팬이 됐어요. 셔츠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연설하면서 뛰는 모습에 진정성이 느껴져서 지지를 결정했어요.”
케네디 씨와 그의 세 친구는 워싱턴을 중심으로 ‘베토와 함께 달리기’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은 매달 첫 주 토요일에 지지자들을 모아 라파예트 공원에서 출발해 1시간 반가량 달린 뒤 주변 커피숍에서 오로크 후보를 알리는 캠페인에 나설 예정이다. 데브지트 사르카 씨는 “미군으로 오래 근무한 사람으로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며 정권 교체를 기대했다.
내년 11월 3일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은 대선 후보를 고르기 위한 준비작업에 한창이다. 재선에 나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내 독주체제를 굳힌 가운데 18일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대선 출정식을 열 계획이다. 경선에 나서겠다고 한 빌 웰드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 외엔 공화당에선 다른 도전자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잠잠한 모습이다.
○ 풀뿌리 선거유세에도 총동원전
케네디 씨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특징은 워싱턴에 있는 민주당 지지자들끼리 자발적으로 만들고 참여한다는 것이다. 경선 캠페인이 미 전역에서 진행되다 보니 캠프 본부가 모든 이벤트에 일일이 개입하거나 기획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풀뿌리 지지자들이 스스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본부에 제안하고, 승인 받으면 캠프의 이름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기자가 이들을 알게 된 것도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서였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넣고 참가 신청을 하자 얼마 되지 않아 “환영해요. 라파예트 공원에서 오전 9시에 만나요”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왔다. 다른 후보들의 캠프도 크게 다르지 않다. 버니 샌더스, 카멀라 해리스 후보 등의 웹사이트에서는 지역 단위의 바비큐 행사나 토론회, 달리기 대회 같은 프로그램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26, 27일에 열릴 첫 민주당 대선주자 토론회를 앞두고 각 캠프의 움직임이 점차 속도를 내고 있다. 대선 레이스에 뛰어든 후보가 23명에 이르다 보니 인지도와 지지율을 높이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30∼70대로 다양한 후보들의 연령대는 베이비붐 세대와 X세대, 밀레니얼 세대까지 분포돼 있다. 여성 후보는 6명이고 성소수자 후보까지 나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캠프에서는 본부의 선거전략 차원에서 이뤄지는 각종 유세는 물론이고 미세혈관에 해당하는 각 지역의 자원봉사자 프로그램까지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현재 1위를 달리고 있는 후보는 조 바이든 전 부통령. 그는 최근까지 각종 조사기관의 지지율 조사에서 2위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20%포인트에 가까운 격차로 따돌리며 앞서가고 있다. 8일 CNN방송이 미디어콤 등과 공동으로 아이오와주 민주당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바이든 전 부통령은 24%를 얻어 1위를 기록했다. 아이오와주는 민주당, 공화당 모두 첫 코커스를 진행해 대선풍향계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는 점에서 조사 결과가 주목되는 곳.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16%로 2위에 올랐고,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15%), 피트 부티지지 인디애나주 사우스벤드 시장(14%), 카멀라 해리스 상원의원(7%)이 뒤를 이었다.
○ 부침 거듭하는 군소 후보들, “아직 예단 말라”
현재까지 부동의 1위를 달리고 있는 바이든 전 부통령은 76세라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50년 가까운 정치경력과 앞서 두 번의 대선 도전 경험, 진보와 보수 양쪽의 지지를 받는 안정감이 강점이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 간 ‘빅 매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2016년 민주당 경선에서 사회주의 돌풍을 일으키며 급부상했던 샌더스 의원은 과거만큼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고, 나머지 후보들도 1위와 큰 폭의 격차로 고전하는 상황. 올해 초만 해도 ‘다크호스’로 조명 받았던 오로크 후보는 뒷심을 발휘하지 못한 채 지지율이 2%대까지 주저앉았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최근 아이오와주 민주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지지율 조사에서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굴욕을 겪었다.
물론 민주당이 경선에서 최종 후보를 낙점하는 시기는 내년 7월로, 아직 1년이 남아 있다. 과거에도 혜성 같은 후보들이 뒤늦게 치고 올라왔던 전례가 있는 만큼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게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다.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이 바뀐 2008년 대선 당시 루디 줄리아니 후보가 초기에 각광을 받았지만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넘어서지 못했다. 클린턴 또한 무명이나 다름없었던 버락 오바마 후보에게 패했던 전례가 있다. 더블라지오 시장도 CNN 인터뷰에서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다”고 큰소리를 쳤다.
○ 난립하는 후보, 치열한 경쟁
민주당은 대선후보 3차 토론회부터 13만 명의 후원자를 확보한 후보에게만 참가 자격을 주겠다는 방침을 최근 밝혔다. 후보 난립으로 짧은 시간의 토론회에서 충분한 검증이 이뤄지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해 진입장벽을 확 높인 것. 6월과 7월에 각각 예정된 토론회 참가 기준인 6만5000명의 2배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현재 이 기준을 충족하는 캠프는 해리스, 샌더스, 워런, 부티지지 후보 정도다. 바이든, 오로크 후보는 기준선에 빠르게 다가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3차 토론회를 기점으로 줄줄이 떨어져 나갈 가능성이 있다. 이달 초 21번째 대선주자로 뒤늦게 레이스에 올라탄 마이클 베넷 상원의원은 “우리가 앞으로 전진하기 위한 국정운영과 상관없이 ‘바이럴(입소문)’을 통해 후원 모집 경쟁을 하는 것이 민주주의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재선 가능성이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으려면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군을 중심으로 선택지를 좁혀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크다. 18일 대선 출정식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은 현역 프리미엄과 40%대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재선 기반을 굳혀가고 있다. 민주당 강세 지역인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암웨이센터에서 2만 명의 지지자가 결집해 진행하는 그의 출정식은 민주당을 위축시킬 만큼 강력한 대선 신호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예상하는 미국인은 절반이 넘는 54%(CNN이 여론조사업체 SSRS에 의뢰해 얻은 결과)에 이른다.
○ 불붙는 사회주의 공약 논쟁
민주당 후보들은 특히 사회주의적 요소가 강한 공약들을 앞세우고 있다는 점에서 공화당은 물론이고 기존 민주당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린 뉴 딜(Green New Deal)’ 정책이나 ‘모두를 위한 의료보험(Medicare for All)’,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분할 및 규제, 부자들의 소득뿐 아니라 재산에도 고율의 세금을 매기자는 ‘부유세’ 등이 대표적인 정책으로 꼽힌다.
특히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들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는 워런 의원의 지지율이 최근 오르는 추세다. 그가 연설할 때마다 청중석에서 의자 위로 뛰어오르거나 환호하는 지지자들의 요란한 반응은 미 언론들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10일 미 의회전문매체 더힐에 따르면 여론조사업체 갤럽이 미국 성인남녀 1024명을 조사한 결과 43%가 ‘일정한 형태의 사회주의는 미국에 좋다’고 응답했다. 사회주의는 미국에 나쁜 것이라는 응답(51%)보다는 적지만 편차가 크지 않다. 그러나 “비현실적”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이들 정책에 소요되는 재원을 마련할 구체적인 방안이 없다는 점에서다.
미 의회의 움직임을 지켜본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민주당이 각종 정책과 공약을 내세우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내세우고 있는 정책과 비교해 선명성이 떨어진다”며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강력한 후보에 맞설 대안이 없고 당의 구심력과 이슈 장악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 반(反)트럼프’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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