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섭의 패션 談談]〈21〉4차 산업혁명을 입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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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아침에 눈을 뜹니다. 스마트폰 알람이 저를 깨우죠. 식사를 준비하러 냉장고에 가니 정수기 필터를 교체하라네요. 아침을 먹는 중에 발밑으로 로봇청소기가 돌아다닙니다. 오늘은 출근과 동시에 외근입니다. 초행길이지만 내비게이션이 미리 검색해 놓은 최단거리로 빠른 길을 안내해 주죠. 미래가 아닌 현재의 우리 모습입니다.

이런 일사불란한 출근길에 가장 큰 걸림돌은 바로 ‘오늘은 무엇을 입지?’라는 고민 아닐까요. 미리 생각도 해보고 최신 유행과 신상품 검색을 통해 일주일 치 스타일링 계획표를 짜보기도 했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런 생활의 변화를 만들어낸 산업혁명의 고비마다 패션은 대중의 생활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차 산업혁명은 1784년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촉발됐습니다. 직기와 같은 기계화된 제조기반을 통해 패션은 대중이 쉽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으로 거듭났습니다. 직물이 대량 생산되면서 소수 특권계층만 누렸던 멋의 추구란 달콤함을 맛볼 수 있게 됐죠. 2차 산업혁명은 1870년 전기 보급으로 원료의 대량 생산에서 완제품의 대량 생산이 본격화된 시기입니다. 전기 재봉틀의 사용으로 맞춤복의 시대에서 기성복의 시대로 바뀌는 큰 변화가 있었죠. 스몰, 미디엄, 라지 같은 사이즈 개념이 도입되면서 인간의 몸에 옷을 맞추는 패션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나고 옷에 인간의 몸을 맞추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1969년 컴퓨터의 등장으로 이루어졌죠. 정보화 및 자동화 시스템이 모든 산업에 도입되면서 더 거대한 생산체제가 가능해졌습니다. 패션에서는 봉제를 제외하고는 사람 손이 거의 필요 없어졌습니다. 옷감 재단도, 의류 완제품을 실어 나르는 것도 모두 거대화, 자동화되었고 백화점, 대형 쇼핑몰의 등장으로 대량 유통이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첨단화된 물류 시스템은 계절성이 중요한 패션산업에 큰 도움을 주었지요.

현재의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패션은 빅데이터, 모바일, 인공지능 등과 융합해 혁명적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손끝 터치만으로 패션 트렌드를 파악할 수 있고 매장에 가지 않아도 원하는 상품을 싸고 쉽게 구입할 수 있죠. 사이즈가 맞지 않을까 걱정이시라고요? 지금의 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사이즈 개념이 몸에 밴지라 사이즈 규격이 다른 해외 구매도 쉽게 해냅니다. 패션 자체도 예전의 드레스나 재킷같이 몸에 꼭 맞아야 멋졌던 옷들에서 티셔츠나 데님같이 적당히 맞아야 멋진 옷들이 대세입니다.

앞으로의 패션은 또 어떻게 바뀔지 정말 궁금합니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봤던 우주복 스타일의 패션을 실제로 입게 될까요? 5차 산업혁명 시대로 가도 패션은 존재할 거라 믿습니다. 다만 시대의 변화를 통한 미의 기준과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어 있겠죠. 100세 시대가 도래했으니 그 변화도 직접 입어보고 싶네요.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4차 산업혁명#빅데이터#인공지능#패션 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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