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의 자연과 삶]〈4〉개미 기생충의 놀라운 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6월 17일 03시 00분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개미들도 출퇴근을 한다. 해가 뜨면 일하러 나가고, 해가 지면 다들 줄지어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가끔 퇴근 대열을 이탈해 근처 풀줄기를 타고 올라가는 녀석이 있다. 올라가 줄기 끝이나 이파리 끝을 꽉 물고 대롱대롱 매달린다. 짜릿한 스릴을 즐기는 자기 나름의 취미 활동일까? 그럴 리 없다. 집단생활을 하는 개미에게 혼자 있는 건 위험을 자초하는 것이고, 지나가는 초식동물들에게 풀과 함께 먹힐 가능성도 크다. 그런데 왜 이럴까?

스스로 하는 게 아니다. 개미의 뇌는 이 글의 마침표만 한데, 이 작은 뇌로 들어간 어떤 괴이한 ‘녀석’이 이렇게 하라고 조종한다. 녀석의 이름은 창형흡충. 다시 말해 기생충이다. 녀석의 손아귀에 들어간 개미는 로봇이 되어 시키는 대로 한다. 근데 왜 하필 해질녘 풀잎 끝일까?

개미 뇌 속에 있는 녀석은 소나 양에게 먹혀야 고향인 소나 양의 간으로 갈 수 있는데 가장 잘 먹힐 수 있는 장소가 여기이고, 해질녘에만 매달리는 것 역시 초식동물들이 선선한 저녁나절 풀을 많이 뜯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 일이 뜻대로 안 될 수 있어 그렇게 해도 실패할 수 있다. 녀석들은 낙담하지 않는다. 그럴 수 있다는 듯 개미를 깨워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시도한다.

개미를 희생시켜 고향으로 간 녀석들은 거기서 영양분을 훔쳐 먹으며 살다 때가 되면 알을 낳아 배설물을 통해 밖으로 내보낸다. 고향에서는 살기 마땅치 않은 까닭이다.

밖으로 나간 알들은 정말이지 기가 막힌 여정을 시작한다. 달팽이들이 소의 배설물을 먹을 때 달팽이 속으로 들어간 녀석들은 따뜻하고 안전한 달팽이 창자 속에서 부화한다. 그러다 때가 되면 허파로 몰려가 ‘난리’를 쳐서 달팽이에게 ‘재채기’ 비슷한 걸 하게끔 한다. 끈끈한 액체와 함께 밖으로 튀어 나오려는 ‘공작’이다. 물론 다음 일정도 다 계획돼 있다. 부지런한 개미들이 먹이인 줄 알고 가져갈 때 개미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녀석들은 여기서 때가 되면 개미 머리에 모이는데, 모였다가 한두 녀석만 남고 다들 창자로 이동한다.

어떤 과정을 거쳐, 누가 선발되는지 모르지만 남은 녀석은 다른 동료를 위해 개미를 로봇으로 만드는 조종사가 돼 잎 끝에 매달리도록 한다. 동료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게끔 수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다. 1mm밖에 안 되기에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뇌가 제대로 있는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이런 복잡한 생존전략(생활사)을 만들어 냈는지 놀라운 뿐이다. 이런 능력을 가진 녀석들이 자연에 꽤 있다니 더 그렇다.

그나저나 우리 머릿속은 어떨까? 이런 녀석들은 없어도 비슷한 녀석들은 분명 있는 것 같다. 누군가의 그럴듯한 말이나 욕심 같은 것들이 개미를 조종하는 녀석들이 그러는 것처럼, 우리를 우리도 모르게 어디론가 이끌고 간다. 그렇게 소중한 삶을 허비하게 한다. 그러니 한번쯤 생각해보자. 지금 내가 하는 행동은 온전히 나 스스로 하는 것일까?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개미#개미 기생충#창형흡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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