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어야 생각이 깊어진다는 말은 생각하지 말기로 합시다. 독서라는 것은 어떤 효과가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지요. 그보다는 어렸을 때 ‘역시 이것’이라 할 만큼 자신에게 아주 중요한 한 권을 만나는 일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미야자키 하야오, ‘책으로 가는 문’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왔는데 아군을 만난 기분이었다. 책으로 대표되는 지식 혹은 사고력과 타인을 향한 공감 능력이나 배려심은 별개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자주 간과한다. 지난해 문화계 인사들의 추문을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겠는가.
반대로 내 친구 한 명은 책을 1년에 한 권도 읽지 않지만 그의 마음 씀씀이를 보면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속이 깊은가 싶다. 세련된 문화적 지식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따뜻함이 그에게 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도 독서의 효과를 거론할 때 등장하지만 그 길이 나한테 맞는지는 걸어가 보아야만 알 수 있다. 실제로 걸어가 보면 저자가 의도했던 말이 애초에 내가 이해했던 것과는 전혀 다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저자의 일생이 그의 사상과는 달리 실망스러울 때도 많았다. 훌륭한 책을 지은 사람이 그른 행동을 했다면 그 책의 내용도 일부만 받아들이는 게 낫지 않을까. 양서를 읽든 아니든 인생은 스스로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
그러니 나도 아이에게 책 읽기를 권유한다면 아이의 상황과 성격의 결에 맞는, ‘끌리는 책’을 만나라고 할 것 같다. 훌륭해서가 아니라 끌렸기에 소중한, 자신을 더 또렷하게 만들어주는 한 권 말이다. 내게는 그런 책이 있었다. 그 책이 언어의 아름다움을 알려주었고, 노랫말을 소중히 여기는 가수가 되게 도와주었다. 아이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법도 없다. 아이 자신답게 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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