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 발발 69주년이다. 70주년을 한 해 앞두고, 한반도 평화를 외치며 6·25의 상흔을 감추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던 시점이라 감회가 더 새롭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6·25 유공자를 초청한 자리에서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6·25가 북한의 침략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를 처음 언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김정은은 지난주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는 14년 만에 방북한 시진핑과 함께 조중우의(朝中友誼)탑을 참배한 뒤 “조선(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6·25를,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부르며 북한이 침략당한 것처럼 호도해왔다. 문 대통령의 ‘북한의 침략’ 언급은 북한과 중국이 6·25를 우의 회복의 잘못된 상징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대응의 성격도 있다.
6·25는 남한이 북한의 침략을 유도해 일어난 것이라는 수정주의 역사학자들의 주장은 소련 해체로 북한의 의도적 침략을 증명하는 소련 기밀문서가 공개된 후 힘을 잃었다. 그러나 전쟁의 책임 소재를 흐리고 싶은 이들은 여전히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은 3월 캄보디아 방문 중 “내전을 극복한 캄보디아의 지혜를 배우고 싶다”, 이달 스웨덴 방문 중 “한국전쟁으로 남북뿐만 아니라 참전국의 장병까지 수많은 목숨을 잃었다”는 말로 전쟁의 책임을 언급하길 꺼린다는 인상을 줬다.
6·25의 책임 소재를 흐리면서 한반도 평화를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위선 그 자체다. 우리가 한반도의 평화를 간절히 원하게 된 것은 바로 6·25의 비극을 당사자로 처절히 겪었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 분단되거나 대립한다고 모두 전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전쟁은 차라리 예외적인 현상이었다. 그래서 냉전(冷戰)이라 부른다. 이 냉전을 예외적으로 열전(熱戰)으로 만들어 수백만 명을 희생시킨 장본인이 김일성임을 잊지 않아야 그 위에서 평화가 가능하다.
6·25전쟁에서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운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영웅이다. 군사 정권을 거치면서 박제화됐던 이 사실이 나라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오히려 더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나라를 되찾은 것만큼이나 되찾은 나라를 지킨 노력의 소중함을 기억하는 6·25 69주년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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