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 처음 한국에 왔다. 당시 모든 사람들이 폴더폰을 사용했고 필자도 그것을 썼다. 통화 기능 중에는 화상통화 기능이 있었다. 매우 놀랍고 신기했다. 그러다가 2010년 6월에 한국에 대단한 사건이 터졌다. 그것은 바로 스마트폰 출시다. 모든 사람의 손안에 작은 컴퓨터가 쥐어졌다. 이는 우리 삶에 엄청난 혁명을 가져왔다. 요즘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통해 정보를 전달받기도 하고, 반대로 정보 공급원이 되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특별한 절차 없이 바로바로 낼 수 있게 됐다. 세상이 열려 있다는 증거이다.
필자는 다문화 관련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문화인들과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며칠 전 평화로웠던 네트워크에 재난과도 같은 사건이 터졌다. 급한 대로 확인해 보니 정헌율 전북 익산시장이 다문화가족 행사 축사에서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을 “잡종”이라는 적절치 않은 표현으로 지칭했다는 소식이었다. 잡종이란 말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이 분노하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검색해 봤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표현으로 다문화 자녀를 비유했다.
과학사전 정의에 따르면 잡종이란 ‘이계간(異系間), 이품종간, 이종간, 이속간(異屬間) 등 유전적 배경이 다른 것끼리 교잡하여 생긴 개체’다. 그렇다면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은 인간이 아니라는 말인가. 사실 말꼬리를 잡고 문제를 제기하고 싶진 않다. 다만 사회적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지도자의 입에서 적절하지 않은 용어가, 심지어 당사자들이 보는 앞에서 나와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다문화가족 어머님들이 하는 말씀을 듣고 더 가슴이 아팠다. 결혼이주 여성들에 대해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우리는 참겠으나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25일에 익산시청 앞에서 기자회견도 열렸지만 아직까지 다문화가정들의 분노가 끝나지 않았다. 마음이 아픈 당사자들은 이것으로 끝을 내고 싶지 않기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다문화 인권’과 관련 청원을 올렸고, 현재 동의한 사람이 3만3000명이 넘었다.
익산시장은 사과문을 비롯해 여러 경로로 사과 입장을 낸 것으로 알고 있다. 다문화가족 중 많은 이들이 “익산시장 사퇴하라”고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는 한 사람이 사퇴해서 해결이 될 문제가 절대 아니다. 한국 사회에는 외국인 노동자를 비롯해 다문화가족을 혐오하고 비하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진정한 다문화 인식 개선을 위해서라면 조금 더 이성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사과를 받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접근이 필요하다. 무조건 시위하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자진 사퇴하라’는 글을 올리기만 하면 다문화가족이 역으로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사건이 처음 터졌을 때 필자 또한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고,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다시 보니 시장이 사퇴해서 문제가 해결될 것도 아니고, 결혼이주 여성들 또한 너무 전투적으로 이 일에 접근하고 있는 것 같다. 좋은 전투도 전략이 필요하듯 이번 일을 통해 진지하게 우리 다문화가족 및 자녀들이 이 사회에서 이와 같은 발언과 발표문이 나오지 않도록 미리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결혼이주 여성들이 대한민국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소중하고 사랑하는 자녀들이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인재로 자라고 있다.
어디를 가도 불편하고 힘든 일은 있기 마련이다. 한국인이 미국에 가도, 몽골에 가도 불편하고 힘들다.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여겨지고, 그나마 아이들은 한국인으로 자라고 있다. 다른 나라에서 한국인이 일을 부지런히 잘한다는 인식을 심어준 것처럼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면 된다. 이런 노력이 지속된다면 20, 30년 후에 사회가 달라질 것이다. 한국인들 또한 다문화에 대한 편견을 버려야 한다. 이번 사건을 통해 사람들이 다문화 자녀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구성원들 앞에서 좀 더 신중하게 발언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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