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는 산등성이에 기대어 스러지고/황하는 바다로 흘러드네. 천리 아득한 곳을 바라보고자/다시 한 층을 더 올라가네. (白日依山盡 黃河入海流 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관작루에 올라(登관雀樓)’(왕지환·王之渙·688∼742) 》
높다란 누각에 올라 산 너머 낙일(落日·지는 해)과 바다로 흘러드는 강물을 조감하는 시인, 뒤이어 시야를 최대한 넓히고자 다시 더 높은 곳으로 오르겠다는 다짐. 표면상 이 시는 호탕한 호연지기를 노래하고 있다. 대자연의 장엄한 미감, 그리고 삶의 기개를 관통하는 시인의 통찰을 읽을 수 있다. 제4구 ‘경상일층루’는 인생살이의 진취적 모색과 기상을 표현하는 성어로 곧잘 쓰인다. 다시 한 층을 더 오르려는 의지는 자신을 향한, 또 세상을 향한 담대한 옵티미즘(낙천주의)이라 할 만하다. 이 옵티미즘은 번성을 구가했던 성당(盛唐·당나라 전성기)의 시대적 기운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다른 각도로 보면 시인에게 있어 지금은 여유로운 시점이 결코 아니다. 해는 뉘엿뉘엿 기울고, 강물은 이미 종착점으로 흘러들지 않는가. 그렇게 세월은 야금야금 기울고 있다. 시인이 포착한 낙일과 강물에서 우리는 그의 녹록지 않았을 삶을 떠올린다. 조바심과 초조함이 설핏 배어 있다. 실제 왕지환은 숱한 모함 속에 미관말직을 전전했고, 15년 동안 관직에서 쫓겨나 있기도 했다. 결국 시인은 서둘러 다시 한 층을 더 올라야 비로소 시야가 한껏 확보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잡는다.
시인의 손을 벗어난 시는 이처럼 때로 전혀 판이한 분위기로 읽힐 수 있다. 왕지환이 남긴 시는 불과 여섯 수. 이 시는 관작루를 읊은 역대 작품을 두루 능가한다고 평가된다. ‘황하는 멀리 흰 구름 사이로 흐르고’로 시작되는 ‘양주사((량,양)州詞)’ 또한 ‘당대 절구(絶句)의 백미’로 손꼽히며 장안 가기(歌妓·기생)들의 애창곡으로 널리 유행했다고 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