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수출 규제로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정부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은 핵심 부품·소재·장비의 국산화율을 높이기 위해 가능한 사업들을 취합하고 예산 조정에 나선다고 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부품·소재산업 경쟁력 강화방안’을 마련해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만시지탄이며 당장 도움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부품·소재산업의 중요성을 뒤늦게라도 절감한 게 그나마 다행이다.
이번 일본의 3대 수출 규제 품목 가운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FPI)는 93.7%, 포토레지스트는 91.9%, 고순도 불화수소인 에칭가스는 43.9%가 일본산이다. 이게 우리가 처한 부품·소재산업의 냉혹한 현실이다. 반도체 전체로 보더라도 장비·부품·소재의 국산화율이 절반에 훨씬 미치지 못해 한국이 완제품을 해외에서 많이 팔면 팔수록 실속은 일본이 챙긴다는 말이 이상할 게 없다.
부품·소재산업 육성의 시급성, 특히 기술 종속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산 대체율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본격적으로 나온 게 이미 1990년대 초다. 대일 무역 역조가 심해지면서 정부는 부품 국산화 전략을 추진했고 2001년에는 ‘부품소재전문기업 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까지 마련했다. 자동차 조선업 철강 분야 등에서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반도체 화학 등 여전히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분야도 많다. 이번에 일본이 이런 우리의 약점을 콕 집어 파고든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삼성전자 LG전자를 필두로 한국산 휴대전화, 반도체, 디스플레이, 가전제품 등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면서 자신감에 젖어 부품·소재의 자체 기술력 향상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 1∼4월 수출입 통계를 보더라도 11개 주요 부품·소재산업 중에서 10개가 대일 무역적자이고 한국이 강하다고 하는 전자산업에서도 대일 수입이 수출보다 4배나 많았다.
덩치는 크지만 체질이 허약한 한국 전자산업의 민낯이 드러난 만큼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부가 기업과 함께 나서야 한다. 과학 분야 노벨상을 일본이 16명이 타는 동안 한국은 한 명도 없다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일본의 기술력이 하루아침에 세계 최고 수준에 오른 것이 아니다. 세금을 걷어 엉뚱한 데 마구 쓸 것이 아니라 기업, 대학과 함께 머리를 맞대 장기 플랜을 세우고 인재를 육성하는 데 예산과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게 소 잃고서라도 외양간을 고치는 일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