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인사청문회, 그중에서 대법관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 법조인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에서 흔히 듣는 답변이다. 민감한 사안일수록 자주 등장한다. 답변하기 난처한 질문이면 후보자들은 어김없이 이같이 답한다. 법적·정치적 논란을 살짝 피하면서도 욕먹지 않을 수 있는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남발되기도 한다. 새로운 답변을 잔뜩 기대하던 언론이나 여야 청문위원, 청문회를 관심 있게 지켜보는 사람들에겐 맥 빠지는 표현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오늘 열리는 윤석열 검찰총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는 ‘모범답안’이 이전과 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예전처럼 ‘법과 원칙’을 언급할까?”
“100명 가까운 의원들의 정치적 목숨이 걸려 있는데?”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과 최근 나누는 화두 중 하나다. 이번 청문회엔 민감한 이슈가 많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과거사 관련 수사,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답변 하나하나가 정국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상당수 의원의 관심은 세간의 관심과 다르다. 사법개혁 논쟁은 필연적으로 국회 패스트트랙 지정 과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태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문제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첫 폭력 사태로 현역 의원 109명이 수사 선상에 올랐다. 자유한국당 59명, 더불어민주당 40명, 바른미래당 6명, 정의당 3명, 무소속 1명 등이다. 청문회를 맡은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대부분 포함됐다. 한국당은 여상규 법사위원장 등 법사위원 7명 전원이 피고발인이다. 민주당도 송기헌 간사 등 4명이, 바른미래당은 오신환 원내대표가 수사 선상에 올라 있다.
2012년 여야는 국회선진화법으로 불리는 국회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정치권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국회 폭력에 대해서는 형법상 폭행죄 또는 공무집행방해죄보다 높은 형량으로 처벌하기로 했다. 벌금 500만 원 이상의 형이 확정되면 5년, 집행유예 이상 형이 확정되면 10년까지 국회의원 등 모든 공직선거에 나갈 수 없다. 정치적 고려 없이 이번 사건을 법조문대로만 판단할 경우 기소가 불가피하고, 법원은 유죄를 선고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여러 법조인들의 관측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에겐 사형선고나 마찬가지다.
연루된 의원들은 윤 후보자 입만 바라보고 있다. ‘법과 원칙’을 강조할지, 아니면 “국회의 결정을 보고 신중하게 판단하겠다”는 식의 답변이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치권의 검증 대상인 검찰총장 후보자의 입에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달려 있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여야가 스스로 자초한 일이다. 정치권이 여야 간에 벌어진 일을 검찰로 가져가 스스로를 옭아매고 결국 정치 실종을 불러오는 ‘자해’를 하는 셈이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요즘 의원들에게 ‘자모인모(自侮人侮·내가 나를 업신여겨 함부로 대하니, 남도 나를 업신여긴다)’라는 격언을 많이 인용한다. 듣는 의원들은 언짢을 수 있겠지만 항변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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