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데 덩치가 작으면 불리하다. 눈에 띄지 않는 게 신상에 좋다. 세상의 작은 존재들은 이런 생존 원리를 잘 알고 있어 조용히 살아가는 편이다.
그런데 이 중요한 원리를 보기 좋게 무시하는 녀석들이 있다. 덩치가 작은데도 ‘나, 여기 있다’고 온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요즘 볼 수 있는 무당벌레들이다. 손톱 크기도 안 되는 녀석들이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빨간 바탕에 검은 점들을 날개에 떡 하니 새기고 거침없이 돌아다닌다.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이럴까?
이상한 건 이른 아침부터 먹이를 찾아다니는 새들이 이 눈에 확 띄는 녀석들을 본체만체한다는 점이다. 빨간색이라 너무나 잘 보일 텐데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건드리면 녀석들은 아주 역겨운 액체를 내뿜는다. 배고픈 김에 멋모르고 건드렸다 혼쭐난 새들은 다시는 건드리지 않는다. 바라던 바다. 작은 덩치로도 잘 살 수 있게끔 녀석들이 개발한 ‘혈액반사’라는 삶의 무기가 있기 때문이다. 녀석들은 위기가 온다 싶으면 다리 관절에서 이 비장의 무기를 흘린다.
그러면 멀리서도 눈에 확 띄는 ‘패션’을 구사하는 이유는 뭘까? 멋모르는 새가 쪼면 혼쭐을 낼 수 있지만 먹히는 순간 죽거나 다친다면 하나뿐인 생명도 사라질 게 아닌가? 질병도 예방이 좋듯, 위험도 마찬가지. 그래서 녀석들은 보란 듯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새들이 실수로 먹는 일이 없게끔 맛없는 자신의 존재를 동네방네 알린다. 흔히 말하는 ‘경고색’이다. 벌들과 노린재, 그리고 요즘 부산 부근에 나타나 해수욕장에 가고 싶어 하는 이들을 떨게 하는 파란고리문어들도 마찬가지다. 선명한 선과 색으로 자신이 ‘밥’이 아니라 ‘독’한 녀석이라는 걸 부각시킨다. 잘못 건드렸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 작은 강자들은 생존의 원리 두 가지를 알고 있다. 덩치가 작아도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더 이상 약자가 아니라는 것과 이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제대로 드러낼 줄 몰라 속으로 끙끙 앓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구나 애써 공들인 성과를 은근슬쩍 가져가는 이들을 어쩌지 못할 땐 삶이 우울해진다. 이런 이들을 혼쭐내 주는 독한 능력과 함께, 큰코다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낸다면 소중한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을 예쁘게 드러낼 줄 안다면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서양에서 무당벌레는 행운의 상징이다).
작다고 약자가 아니고, 크다고 강자는 아니다. 작아도 결정적인 무기가 있으면 강자다. 자신의 강함을 제대로 나타낸다면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다. 작은 벌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작을수록 독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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