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근교 콴티코에 미국 해병대박물관이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해병 항공대의 전투기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중앙홀이 나타난다. 땅에는 해병대의 전투 장면이 재현되어 있다. 2개의 전투가 있는데 하나는 베트남전의 풍경이고, 다른 하나는 태평양에서의 상륙작전이다.
미국은 태평양전쟁 당시 60회가 넘는 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사실상 최초의 지상전이었다고 할 수 있는 과달카날 전투, 해변 상륙지점에서 격렬한 전투를 벌인 최초의 상륙작전이면서 실수투성이였던 타라와 전투, 맥아더의 명예회복이자 영광이 된 필리핀 전투, 민간인까지 집단자살을 해서 충격을 안겨주었던 괌과 사이판 전투, 지옥과도 같았던 그러나 한편으로는 해병의 피와 땀의 상징이 된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전투…. 그 나름대로 다 의미가 깊은 전투들 중에서 해병대박물관이 전시를 선택한 것은 타라와 전투였다.
타라와 상륙작전은 1943년 11월 20일에 시작됐다. 타라와는 솔로몬 제도에 있는 길고 가느다란 환초다. 이 중에서 제일 큰 섬이 베티오인데 이곳에 일본군 활주로가 있었다. 중부 태평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일본군도 이 섬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대대적인 요새화 작업을 진행했다. 이 공사에 1400명이 넘는 조선인 징용자가 동원되었다.
전투란 일단 시작하면 온갖 실수, 예상치 못한 사고의 회오리 속으로 뛰어드는 행위이다. 처음 해보는 작전이라면 혼란은 더 엄청나다. 미군은 100년 전의 해도에 의지해 수심을 잘못 측정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 상륙정이 환초에 걸려 버렸다. 이때 처음 도입한 수륙양용 장갑차 LVT가 없었다면 끔찍한 비극으로 끝날 뻔한 전투였다.
하필 타라와 전투를 재현한 이유는 최초의 상륙전투였다는 숫자적인 의미 때문일까? 이 실패로 얻은 교훈이 수많은 성공의 밑거름이 되었다는 의미 때문일까? 실패의 기억은 아프다. 그러나 실패만큼 좋은 교사도 없다. 뻔한 교훈이지만 실천은 정말 어렵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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