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교육청이 어제 경희 배재 세화 숭문 신일 이대부고 중앙 한대부고 8곳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 기준 점수인 70점에 미달됐다며 지정 취소를 결정했다. 서울시내 자사고가 22곳인데 무려 36%가 폐지될 위기다. 예상을 뛰어넘는 무더기 폐지 결정으로 교육 현장에 극심한 혼란이 우려된다.
‘자사고 폐지’를 공약한 이 정부에서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사실상 폐지를 위한 수순으로 보였다. 서울시교육청은 학교별 총점이나 탈락 이유를 공개하지 않았고 평가위원 명단도 ‘깜깜이’였다. 이번 평가에서 탈락한 학교 8곳 중 7곳은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취임한 직후인 2014년 평가에서도 탈락했다가 교육부의 직권 취소로 가까스로 부활했던 학교다. 시교육청은 “학교의 개선 노력이 부족했다”고 설명했지만 해당 학교들은 “적폐로 몰려 복수를 당한다”는 격앙된 반응이다.
자사고 폐지로 인한 교육 현장의 혼란은 이제 시작이다. 자사고 교장, 학부모, 동문이 모인 자사고공동체연합은 “감사원 공익감사를 청구하고 소송 등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교육부가 부동의하면 교육청의 소송도 뒤따를 것이다. 다툼이 길어질수록 예비 고1학생 및 재학생들의 피해만 커진다. 또 강남 서초 양천 등을 제외한 이른바 비교육특구 자사고들이 대거 탈락하면서 강남 8학군 쏠림현상이 재연될 수 있다. 평등교육을 명분으로 자사고를 폐지했지만 강남 8학군이 부활하면 교육 불평등은 더욱 심화된다.
서울은 전체 고교 대비 자사고 학교 수는 7%, 학생 수는 9%에 달해 우수 학생을 선점해 입시경쟁을 과열시켰다는 비판이 과거 있었다. 이 때문에 교육당국은 일반고와 동시선발, 추첨선발 등 학생선발권을 제한해 부작용을 줄여왔다. 자사고는 김대중 정부에서 도입됐다. 정부 정책에 호응해 적법한 절차로 만든 학교가 정권에 따라 부침을 겪으면 교육정책의 신뢰도만 떨어질 뿐이다.
고교평준화 도입 45년이 됐고 지식기반사회로 진입하면서 보완이 필요한 시점이다. 수월성·다양성 교육을 배척하는 이념적인 잣대가 아니라 인재 육성이라는 목표 안에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일반고 경쟁력을 그대로 둔 채 자사고만 없애려고 하는데 모두가 하향 평준화하자는 것이 아니고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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