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고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주 52시간제 등 현 정부의 경제정책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계층을 위한 것이 많다. 그런데 정작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그들이다. 대통령은 ‘사람중심경제(J노믹스)’를 표방했는데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문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J노믹스를 설계했던 김광두 서강대 경제학부 석좌교수(전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는 “현 정부가 원설계에서 많이 바꾼 데다 실행 과정에서도 우리가 처한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
―경제 질서에 대한 어떤 인식이 부족했다는 건가.
“문재인 정부는 공정하고 특권 없는, 정의로운 사회를 내세웠다. 그리고 이런 가치에 부합하지 못한 과거의 잘못을 적폐라는 이름으로 없애려고 했다. 지향하는 바는 동의한다. 문제는 방법론이 미숙했다.” (방법론이라니?) “시장경제에서는 경쟁에 지면 물건이 안 팔리고, 안 팔리면 일자리를 만들기 어렵다. 상품 경쟁력은 기업 경쟁력에서 나오고, 기업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그 국가에 있는 게 도움이 돼야 한다. 지금 우리 상황은 기업이 머무르기에 좋은 환경인가? 정부정책이 그런 질서와 맞지 않았다. 양극화를 막고 저소득층의 생활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릴 수는 있다. 그 자체는 좋은데, 임금은 결국 (자영업자와 영세 기업을 포함한) 기업이 주기 때문에 주는 쪽의 생산성과 경쟁력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 고민했어야 했다. 그게 미숙했다.”
―그건 너무나 상식적인 고려 아닌가. 청와대가 몰랐을 리가 있나.
“몰랐다기보다는… (얽히고설킨) 경제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못한 상태에서 서투른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부작용이 경제 성적표의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고….” (소득주도성장을 주도한 장하성 전 대통령정책실장과 친분이 두터운데 그가 시장경제질서를 모를 수가 있나.) “장 전 실장이 시장경제질서에 대한 생각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원래 기업 내 분배 쪽에 관심이 더 많다 보니… 분배에서 노동자가 너무 적게 가져가는 걸 고쳐주는 게 정의라고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인식이 조금 정확하지 못했던 게 우리나라는 영세 기업이 엄청 많다. 그들의 소화 능력에 대한 고려가 부족했다. 부작용에 대한 보완도 일자리안정자금 등으로 도와주면 된다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한 것 같고…. 의사가 약을 쓸 때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쓰면 되나. 정책도 마찬가지다. 세련된 정책이란 정책의 속도와 강도를 대상자가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지 알고 하는 것이다. 선한 의지는 인정하지만, 세련됨이 부족해 결과가 이렇게 됐다.”
―너무 호되게 겪어서인지 최저임금 차등 적용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일본은 지방자치단체가 최저임금을 결정한다. 앞서도 말했지만 음식점이든 주유소든 지역과 업종마다 임금을 주는 쪽의 상황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이 주나. 지금 같은 동일한 최저임금 적용은 개선돼야 한다고 본다.”
―현 김상조 정책실장과도 지난 대선 캠프에서 함께 일했는데….
“김 실장이 이미지는 재벌 공격수로 돼 있지만, 그건 좀 공정을 강조하다 보니 그렇게 된 거고… 아주 유연한 스타일이다. 재벌에 무슨 원한이 있거나 고집만 부리는 사람은 아니다. 공정거래위원장 때는 진보 쪽에서 욕을 먹기도 했다. 변했다고…. 물론 경영계에서는 강경파로 보기도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매우 유연하기 때문에 상당한 노력을 할 거라 본다.”
―문 대통령은 ‘사람중심경제’를 표방했는데 왜 서민층이 더 힘들어진 건가.
“지난 대선 캠프에서 내가 그걸 주도했는데… 원래 내가 설계한 J노믹스는 사람에게 투자하자는 것이었다. 사람의 능력을 올려주면 근로자는 소득이, 기업은 경쟁력이 올라간다. 기업 경쟁력이 오르면 일자리가 늘어난다. 이렇게 가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름이 ‘사람중심경제’다. 그런데 나중에 그냥 임금 보조해주고 올려주는 걸로 바뀌었다. 임금을 올려주더라도 교육, 직업훈련 등 사람에 대한 투자가 병행됐어야 하는데…. 물론 스스로 나아지려는 의지나 능력이 없는 사람도 있다. 그 부분은 복지로 해결해야 하는 거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미래를 준비하기 때문에 투자를 하면 충분히 한 단계 올라간다. 그게 빠졌다.”
―우리는 사람에 대한 투자는 고사하고 학교도 죽이고 있지 않나.
“거참, 거꾸로 가고 있으니… 세계질서를 모른다고밖에 볼 수 없다. 지금대로라면 더 공부하고 싶고, 재주 있는 학생들은 해외로 나간다. 강사들 보호하자고 대학강사법 만들어 정작 강사들 죽인 것과 비슷하다. 시장을 모르는 거지. 외국 학생들이 한국에 와서 공부하게 만들어도 모자랄 판에 왜 우리 학생들이 나가게 만드나. 행정부가 경쟁력이 없는 것도 큰일이다.”
―어떤 경쟁력을 말하나.
“미래에 우리에게 어떤 리스크가 올지 각각에 대한 종합 대응 시나리오가 있어야 한다. 국가위험도평가(NRK·national risk assessments)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중동전쟁으로 기름값이 대폭 오르면 우리 경제는 어떻게 되느냐 같은 거다.” (그런 것도 없을 리가 있나. 대체 수입처 확보 방법은 있지 않나.) “수입처 확보 같은 건 있지만, 내가 말하는 건 산업과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평가 및 대응 시나리오다. 만약 국가적으로 어떤 에너지에 대한 리스크가 있다고 판단되면 장기적인 리스크 완화 정책과 함께 공급 국가나 회사와의 관계 설정, 투자 등을 미리 대비하게 된다. 우리는 그런 게 없으니까 뭐 하나 터지면 그때 가서 우왕좌왕 아니냐. 비상대책회의 만들고… 터진 뒤에 비상대책회의 만들면 뭐가 되겠나. 그게 우리 행정부의 능력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지금 행정부 능력으로는 안 된다.”
―실례지만 당신은 경제 현실과 방향도 잘 알고, 박근혜 문재인 정부 초기에는 나름의 힘도 있었는데 왜 직접 각료로 참여해 뜻을 펼 생각을 안 했나.
“직접 할 생각이 없었다기보다… (정부 같은) 조직은 조직 나름의 구조가 있는데 우리 같은 교수들은 그런 적응 능력이 좀 부족하다고 본다.” (그럼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왜 맡은 건가.) “대통령이 처음에는 다른 생각도 수용하겠다고 했으니까…. 그래서 대선 캠프에도 들어간 거고…. 문 대통령이 미국의 국가경제위원회(NEC) 같은 기구를 만들어 역할을 해달라고 했다. NEC는 미국의 중요한 경제정책의 이견을 조정하는 곳이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의장이고, 내가 부의장으로 대행하는 기구를 만들었고, 그때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될 수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제 운용을 해보니 쉽지 않았다. 회의를 매일, 수시로 할 수도 없었고….” (NEC는 다른가?) “NEC는 백악관 안에 사무실이 있다. 결국 내가 재임 중에 두 번 하고 지금까지 안 열리는 걸로 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말 자문회의 부의장을 그만뒀다.
―지금의 혼란이 새로운 길을 가는 데 따른 변화의 고통일 수도 있지 않나.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개혁은, 개혁을 하려는 사람과 다른 가치를 가진 쪽이 어느 정도는 동의해줘야 성공할 수 있다. 그들이 저항만 하면 성공할 수 없다. 잘해 보려고 하지 않는 정부가 어디 있겠나. 문재인 정부도 잘해 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안타깝게도 지금 나타나는 건, 과거 어느 때보다 정치는 대립적이고, 사회는 분열돼 있고, 경제는 성적표가 좋지 않다.”
―지금의 변화에 대한 욕구는 과거 보수정부가 자초한 면이 있지 않나.
“지금 사회정의, 공정 등에 대한 요구가 강하게 나오는 건 지난 10년간 보수 정부들이 그걸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강자들의 특권 남용, 갑질 때문에 화가 나 있는데 최순실 딸의 부정 입학, 대한항공 2세들의 갑질 같은 게 부채질을 한 거지. 보수가 스스로 개혁했어야 했는데 안 하다 보니 결국 시장질서에 대한 신뢰까지 떨어뜨렸다. 그 결과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는 요구가 대두됐고…. 하지만 그렇더라도 개혁이나 적폐 청산은 미래지향적으로 해야 한다.”
―미래지향적인 적폐청산은 어떻게 하는 건가.
“지금 정부는 적폐가 발생하는 원인과 인프라를 바꾸기보다 사람을 혼내 주고 있다. 사람을 혼내면 일시적으로 조심하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똑같은 잘못이 나온다. 정부 산하 숱한 단체에 정치권 인사와 은퇴 공무원들이 낙하산으로 간다. 그리고 하는 일이 자신과 단체를 위한 로비다. 그게 특권이고 공정성 훼손이 아니면 뭔가. 특권을 행사할 수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줄여주는 게 진정한 적폐 청산 아닌가.” (선거에서 신세졌는데 안 갚을 수도 없지 않나.) “다른 방식으로 보상을 해줘야지…. 그렇게 공정성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로비가 필요한 조직에 신세진 사람을 보내면 또 다른 불공정이 나올 수밖에 없지 않나. 더러운 물을 안 갈고 사람만 바꾸면 똑같은 행태가 계속 나타날 수밖에 없다. 사람을 혼내 주는 방식은 당사자가 강하게 반발하니 쉽지 않지만, 제도를 중심으로 하면 반발도 상대적으로 적을 거다. 적폐청산을 하더라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적폐청산을 하자는 거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