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처음 이룬 인류사 大사건, 옛 소련 등 이어 최근 중국도 성공
한국 정치인들은 손쉬운 공약거리로… 필요한지, 시급한지 과연 따져봤나
과학은 정치의 들러리가 아니다
지금부터 정확히 50년 전인 1969년 7월 18일, 바로 전날 발사된 아폴로 11호는 지구궤도를 벗어나 시속 약 4만 km로 질주하고 있었다. 인류가 처음으로 달나라를 향하는 엄청난 모험의 여행길이었다. 그렇게 3일간을 달려, 드디어 7월 21일 우주비행사 암스트롱과 그 동료는 무사히 달에 착륙했다. 인류 최초로 달을 밟으면서 암스트롱은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이는 인류의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당일 동아일보는 ‘달에 착륙’이라는 타이틀의 호외(號外)와 더불어 특별히 8개 면의 신문을 발행했다. 1면에 게재된, 그야말로 대문짝만한 여섯 글자 ‘인간 달에 섰다’는 어쩌면 지난 99년간의 동아일보 지면에서 가장 큰 크기였을지도 모르겠다. 8개 면 중에서 모두 7개 면이 달 착륙 기사였는데, 그 감동을 사설에서는 “인류는 지구에 얽매여 있었지만 이제 모든 애로와 장벽을 물리치고 무변광대(無邊廣大)의 우주세계에 진출하게 된 것이다”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다른 지면의 ‘횡설수설’은 조금 달랐다. 즉, “문명 발달이란 자연과 싸우는 용기와 모험심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목적을 밖에서 구하지 않고 너나없이 인간적인 가치에 악착같이 눌어붙는다면 적을 안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사색당쟁(四色黨爭)이 아마 그 좋은 본보기가 될는지 모르겠다. 임시공휴일이다 무어다 하고 당사자가 무색할 만큼 법석을 떠는 오늘 ‘인류의 승리’를 그냥 기뻐만 하고 있어야 할지 어떨지 오히려 서글퍼지기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라며 우리 현실에 대한 한탄을 담았다. 공감이 가는 내용이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과연 그렇게 ‘눌어붙던 인간적인 가치’에서 조금은 벗어났는지 의문이다.
당시의 대한민국은 경부고속도로도 없던 시절이니 달나라 여행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었다. 아폴로 11호가 성공하기까지 이 사업에 미국 정부가 투자한 금액은 24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런 막대한 경비는 당시 미국 내에서도 큰 논란의 대상이었다. 여하튼 1969년도 우리 정부의 한 해 예산은 4000억 원이었는데, 이는 당시 환율 ‘1달러=280원’을 고려하면 겨우 15억 달러 정도다. 대한민국은 그렇게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나라였다.
달 탐사는 아직도 경제적 부담이 엄청나며 기술적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120여 번의 달 탐사가 주로 미국과 옛 소련에 의해 시도되었는데 그중에 절반 이상은 실패로 끝났다. 일본은 미국과 소련에 이어 1990년에 세 번째로 무인 달 탐사에 성공했으며, 그 후 인도와 이스라엘 그리고 유럽연합에 이어 금년 초에는 중국 탐사선이 달 뒷면에 처음으로 착륙한 바 있다.
그러면 우리도 달 탐사선을 보내야 할까? 달 탐사 사업은 2012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가 TV 토론에서 “2020년 달에서 태극기를 펄럭이게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고, 집권 후 이를 본격적으로 추진한 적이 있었다. 기술력은 우리도 상당하며, 또 부족한 분야라면 외국과의 제휴 등으로 보완할 수 있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막대한 재정지원을 위해서는 결국 다른 분야가 대폭 희생돼야 하는데, 이것이 과연 효율적일지 그리고 달 탐사가 그렇게 시급한 일인지에 대해서는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어떻든 앞으로는 달 탐사 같은 계획이 대통령 후보의 선거 공약으로 제시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달나라에서 태극기가 펄럭이면 국민적 자긍심은 올라갈 것이고 그런 기대감으로 표를 모을 수는 있겠지만 우주 관련 사업을 그런 목적으로 추진해서는 안 된다. 10년 전 우리는 우주인을 양성한다고 거의 국가적 차원의 행사를 벌이며 두 젊은이를 선발했고, 그중 한 명은 실제로 러시아 소유스를 타고 올라가 우주에서 열흘을 머물고 돌아왔다. 국민들도 이에 잠시 환호했지만, 그런 보여주기 위한 행사는 결국 일회용일 뿐이다.
우주여행 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이 너무 힘들어 눈물지었다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에게 이제라도 용서를 구하고픈 마음이다. 우리도 물론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추구해야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한 걸음씩 차분하게 걷는 일이다. 과학기술은 정치에 크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분야지만, 그러나 정치가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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