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어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관련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교환하는 정보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통해 모든 옵션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제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대표 회동에서 “기본적으로 협정을 유지한다는 입장이지만 상황에 따라 재검토할 수 있다”고 밝힌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GSOMIA 재검토를 외교적 압박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을 보다 분명히 한 것이다.
청와대가 GSOMIA 연장 여부를 일본의 추가 경제 보복에 맞서는 대응 카드로 공개 거론하는 것은 분별 있는 외교라고 보기 어렵다. 당초 청와대는 정 실장의 발언은 야당 대표가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하면 우리도 협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한 번 살펴보겠다는 차원의 원론적 얘기였다고 해명했다. 그런데 다른 관계자가 “모든 옵션을 고려하겠다”고 나서 다시 논란에 불을 지폈다.
GSOMIA는 한일 양측에, 나아가 한미일 안보 협력에 매우 중요한 협정이다. 특히 한일 간 GSOMIA의 체결에는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됐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청와대의 재검토 발언에 즉각 민감하게 반응했다. 미 국무부는 어제 GSOMIA의 연장을 “전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물론 GSOMIA 재검토는 한국의 ‘안보상 신뢰문제’를 제기하며 추가 보복을 준비하는 일본에 대해 그렇다면 우리도 민감한 군사정보를 내줄 수 없다고 경고하는 맞대응 차원에서 나왔을 것이다. 나아가 한미일 협력을 중시하는 미국을 향해 보다 적극적으로 한일 갈등 해결에 나설 것을 유도하는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이익이 적지 않은 협정을 충분한 검토도 없이 재검토할 수 있다며 먼저 외교 카드화한 것은 문제가 있다.
무역 보복조치를 하면서 그 명분으로 안보를 들이댄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판에 직면해 군색한 처지에 빠졌다. 그런 일본의 행태를 따라 하는 건 즉흥적인 대응이자 근시안적 사고다. GSOMIA 재검토는 혹시라도 최악의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될 수 있지만 우리 당국자 입에서 거론된 순간 이미 그 효력도 잃고 말았다. 성급하게 꺼낸 카드가 어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부터 걱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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