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혁안의 윤곽이 처음 그려진 건 약 1년 전. 지금은 우리 사회가 그 방향을 두고 시끌벅적했던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논의 자체가 실종됐다. 종적을 감춘 국민연금 개혁안의 행적을 따라가 봤다.
지난해 8월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국민연금이 현행대로 운영되면 2057년 고갈될 것이라는 재정추계 결과를 발표하고, 매달 내는 보험료율을 최소 3∼4%포인트 이상 올리는 2개 방안을 제안했다. 보건복지부가 이를 두고 여론 수렴에 나섰지만 5년마다 국민연금 재정추계를 하는지도 모르던 국민들에게는 난데없이 지갑 터는 소리로 들릴 수밖에.
‘더 받고 싶지만 더 내긴 싫다’는 국민들의 마음을 읽고 달랜 것이 문재인 대통령이다. 3개월 뒤 복지부의 연금 개혁안 초안을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보험료 인상(폭)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재검토를 지시했다. 연금 개혁안의 비극적인 결말이 예고된 순간이었다. 도저히 ‘더 받고 덜 내는’ 마법을 부릴 수 없었던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현행 제도대로 유지하는 방안을 포함한 4개 방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국회에선 폭탄이 투하됐다는 반응을 보였다. 국회는 재빠르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단일안을 만들어 오면 처리하겠다”며 경사노위에 폭탄을 넘겨 버렸다. 노사 간 ‘오늘’의 이해관계가 팽팽히 맞서는 경사노위에서 ‘미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해 달라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이번 국회뿐 아니라 20년 넘게 국회는 한 번도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에 찬성한 적이 없다. 2007년 단 한 번 소득대체율을 60%에서 50%로 깎았는데 당시에도 보험료는 그대로 뒀다. 그것도 국민연금법은 쏙 빼고 기초노령연금법만 처리했다가 거센 여론의 반발로 궁지에 몰려 통과시켰다.
정부→국회→경사노위가 서로 폭탄을 돌리는 사이 4월 경사노위 내 국민연금 특위는 활동이 종료됐다. 국민연금 개혁안이 그렇게 실종되나 싶었는데 정부가 불씨를 다시 피우는 모양이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8월 말까지 경사노위에서 최종 결론을 내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고 그 논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9월 정기국회에서 국민연금 개혁안 논의의 물꼬를 트기 위해 복지부가 물밑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국민연금이 처음 시행된 1988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전신인 한국인구보건연구원 내 국민연금 연구팀이 꾸려질 당시 연구자로서 참여했다. 그만큼 국민연금에 대한 소신이 뚜렷하고, 올해 초 “국민연금법을 처리해야 하지 않냐”고 청와대에 얘기했다가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럼에도 주무 부처 장관이 개각 교체 명단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나서야 뒤늦게 움직인다는 비판을 피할 순 없을 것 같다. 국민연금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박남훈 전 대통령정책비서관은 ‘보험료 인상이 정치적 문제가 됐다’는 질문을 받고 “정치인은 그렇다고 할지라도 전문가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양심불량”이라고 일침을 놓았다(‘한국의 사회보험, 그 험난한 역정’). 장관을 비롯한 정부 내 전문가들이 침묵했던 지난 1년 동안 국민연금 개혁안은 표류했고, 다음 세대의 부담은 또 늘어났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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