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 노이로제 걸린 군의 헛다리 대책[국방 이야기/손효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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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강원 고성군 해안가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 목선. 고성=뉴스1
12일 강원 고성군 해안가에서 발견된 북한 무인 목선. 고성=뉴스1
손효주 정치부 기자
손효주 정치부 기자
2014년 8월 국방부 내 기자실. 군 관계자들이 군내 가혹행위 등 사건 10여 건을 동시에 발표했다. 후임병 입에 파리를 넣는 등 가혹행위에 이어 성추행까지…. 군내 불미스러운 사건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전례 없는 모습에 기자들은 의아해했다.

당시는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군이 은폐 의혹으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던 때였다.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 장남의 후임병 대상 가혹행위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군은 은폐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당시 육군은 앞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확인되는 대로 모두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악화된 여론 수습책이었다. 실제로 군은 10여 건 공개 이후 각종 사건을 거의 매일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함구하다 특정 사건이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 뒤늦게 공개하는 식의 관행이 다시 이어졌다.

요즘 군을 보면 5년 전이 떠오른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노크 귀순’과 해군 2함대사령부의 거동수상자 발견 및 허위자백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군의 신뢰는 추락했다.

벼랑에 몰린 군은 5년 전 내놓았던 ‘신뢰 수습책’을 다서 꺼내 들었다. ‘노크 귀순’과 ‘거동수상자 사건’이 대공 용의점이 의심되는 사건이었던 만큼 군은 이들 사건 이후 벌어진 대공용의점 의심 사건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12일 강원 고성 해안가에서 북한 무인 목선이 발견된 사실을 공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13일 무인 목선 3척과 15일 1척이 발견된 사실도 알렸다. 무인 목선 발견은 올 들어 15일까지 동해에서 14척, 서해에서 2척 발견되는 등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7일에는 잠망경 추정 물체가 발견된 사실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이는 어망 부표로 드러났다. 앞서 1일엔 “정체불명 항적이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공지했다. 이 역시 새 떼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군이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단 알리고 보자’며 발표를 쏟아내자 비판론도 나온다. 오인 신고나 새 떼를 무인기 등으로 착각하는 일은 1년에 수없이 발생하는 등 ‘뉴스’가 아닌데도 ‘뉴스화’한다는 것. 잠망경 해프닝 기사엔 “북한 잠수함인데 또 은폐한다”는 댓글이 많았다. “오인 신고였다”는 군 발표를 믿지 않고, 불신과 불안이 증폭되는 역효과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군 내부에선 군 지휘부가 ‘은폐 노이로제’로 판단력이 흐려져 꼭 알려야 할 상황과 일상적인 작전 상황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알리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A 장교는 “일상적인 오인 신고까지 모두 알리기 시작하면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B 장교는 “‘묻지 마 발표’는 알권리를 넘어 알 필요가 없는 정보까지 알려 국민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대국민 심리전이라도 하듯 ‘아무’ 발표나 쏟아내는 군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 요구는 아무 사건이나 다 신속히 알려달라는 게 아니다. 삼척항 노크 귀순처럼 군에 치부가 될 것이 명백한 사건을 가려내 스스로 알리되, 있는 그대로 알려 달라는 것이다. 경계 실패를 경계 실패라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목선이 삼척항에서 발견됐으면 삼척항이라 발표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적확한 발표다. ‘삼척항 인근’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쓴 뒤 “군은 원래 이런 용어를 쓴다”며 군내 회의가 아닌 대국민 브리핑 상황에서 군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군은 19일 군 주요지휘관 워크숍을 열어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고 했다. “신뢰 받는 군으로 거듭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군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발표 쏟아내기’로는 신뢰를 얻기에 한계가 있다. 군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계는 왜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됐는지 그 원인부터 정확히 진단한 뒤 해법을 마련하는데 있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노크 귀순#해군 허위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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