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은 피서지에서 흔히 주고받는 말이지만 사실 휴가철에 명심해야 할 점은 ‘집 나가면 위험’이라는 것이다. 휴가철에는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데 특히 방심하기 쉬운 위험은 열사병과 같은 온열질환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무리하게 활동하면 몸에 쌓인 열이 중추신경을 망가뜨릴 수 있다. 열이 나도 땀이 나지 않아 체온은 계속 오른다. 체온이 40도를 넘으면 콩팥처럼 열에 약한 부위가 손상돼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열사병은 자각증상 없이 목숨을 앗아갈 수 있어 더욱 위험하다. 피서지의 들뜨기 쉬운 분위기에서 격렬한 활동은 삼가는 것이 좋다.
질병관리본부는 지난해 4526명의 온열환자가 발생하여 48명이 사망한 것으로 잠정 집계했다. 9월로 예정된 통계청 발표에서는 그 수가 몇 배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014년 이후 통계청은 매년 온열환자 수를 발표하고 있는데 질병관리본부의 수보다 3배에서, 많게는 9배의 차이를 보인다.
온열환자의 발생 장소와 시간대를 살펴보면 의외의 결과가 나타난다. 중증 환자와 사망자를 포함한 ‘초위험군’에 속한 온열환자의 30%가 집 안에서 발생했고, 50% 가까이가 해가 뜨지 않은 저녁과 새벽에 발생했다. 높은 기온과 뜨거운 햇볕만이 온열질환의 절대적인 원인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우리나라는 온열질환의 위험을 예방하기 위해 하루 중 ‘최고기온’을 기준으로 ‘폭염특보’를 발표하고 있는데 그 적합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 있는 부분이다.
하루 중 최고기온이 체온 이상으로 올랐더라도 밤 최저기온이 25도를 밑돌아 신체에 축적된 열기를 식힐 수 있으면 다음 날 기온이 극에 달해도 열에 대한 저항력을 가질 수 있다. 얼마나 뜨거운 열에 노출되느냐에 못지않게 얼마나 지속적으로 열에 노출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호주 기상청은 최고기온뿐 아니라 그날의 최저기온을 고려하여 폭염 예보를 한다.
미국에서는 열사병 예방을 목적으로 1954년 열사병위험지수(WBGT)를 개발하였는데 일본은 2008년부터 이를 본격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WBGT를 계산함에 있어서 기온(10%)이나 복사열(20%)에 비해 습도(70%)에 따른 온도 변화의 가중치가 높다. 습도는 우리 몸이 땀을 발산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열사병 위험을 결정하는 것은 높은 기온보다는 얼마나 지속적으로 열에 노출되었는가, 습한 곳에서 신진대사가 어느 정도 방해받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최악의 조건을 갖춘 곳은 도시의 ‘쪽방촌’이다. 지난해 초위험군 온열질환자가 많이 발생한 곳도 농촌의 밭이나 비닐하우스 못지않게 서울의 쪽방촌이었다. 이곳에서는 집 나가면 위험이 아니라 집 안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폭염의 계절에 휴가지에서의 강한 햇볕도 조심해야 하겠지만, 휴가철 도심에 남겨진 쪽방촌 시민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집 안의 열기’에 대한 대책이 시급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