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방의 쇠퇴[횡설수설/서영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03시 00분


‘인간이 타인에 대한 인내심을 갖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제시함으로써 평화공존을 이룩한 공로.’ 노래방의 원류인 가라오케 개발자 이노우에 다이스케 씨에게 2004년 이그노벨 평화상이 주어진 이유다. 1971년 일본의 밴드 멤버였던 그는 사전에 녹음해둔 테이프를 배경으로 노래할 수 있게 한 반주음악 기계를 내놓았다. 이그노벨상은 발상의 전환을 돕는 이색 연구나 업적에 미국 하버드대 계열 과학유머잡지사가 주는 상이다.

▷가라오케는 비었다는 뜻의 일본어 ‘가라(空)’와 오케스트라(orchestra)를 결합한 일본식 영어다. 영어권 국가로 수출돼 영영사전에도 ‘karaoke’로 등재됐다. 국내 첫 노래방은 1991년 부산 동아대 앞 로얄전자오락실 안에 생겼는데, 200원을 넣으면 반주가 나오는 코인노래방 형태였다고 한다. 노래방은 전국에 빠르게 확산됐지만 껄끄러운 시선도 적지 않았다. 한국에서는 ‘가라오케’는 노래할 수 있는 술집, 노래방은 ‘명목상’ 주류를 팔지 않는 곳으로 구분됐다. 노래방은 1999년 영업시간 제한이 사라진 뒤 직장인들의 회식 2차를 책임지는 대표적인 장소이자 남녀노소가 즐기는 여가문화로 자리 잡았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자영업자들이 상대적으로 쉽게 창업하는 업종이기도 했다.

▷이런 노래방 문화가 급속히 기울고 있다고 한다. 2011년 3만5000여 개로 정점을 찍은 전국의 노래방 수는 코인노래방 창업 열풍이 일던 2015년과 2016년을 제외하곤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급기야 지난해에는 새로 생긴 노래방(766개소)보다 문을 닫은 곳(1413개소)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고 한다. 대한민국 자영업자들의 눈물겨운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노래방의 쇠퇴는 주 52시간제가 도입돼 직장 회식문화가 줄어든 탓이 크다. 각자 일터에서 업무강도가 세졌고 ‘칼퇴근’ 뒤 직장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줄었다. 커피전문점, 당구장, 스크린 골프 등 2차로 갈 곳도 다양해졌다. 다들 취한 상태에서 노래와 춤을 추다 성추행 등 불미스러운 상황이 생길 가능성을 미연에 차단하려는 심리도 커졌다.

▷1인 문화의 유행으로 혼자 노래방에 가는 ‘혼코족(혼자 코인노래방 족)’이 늘면서 대형 룸 위주의 노래방 사업이 쇠퇴하게 됐다는 분석도 따라온다. 이 대목에서 이그노벨 평화상의 수상 사유를 뒤집어보게 된다. 노래방은 서로의 노래를 들어주고 형식적으로 박수를 쳐줘야 하는 ‘적극적’ 사교의 공간이다. 개인주의가 커진 요즈음, 혹 노래방의 쇠퇴는 우리의 타인에 대한 인내심이 줄어든 것과 관련이 없을까.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
#노래방#코인 노래방#회식문화#혼코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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