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의 법무부 장관 유력설이 나오기 전인 지난달 중순경. 더불어민주당 인사 3명이 조 전 수석과 저녁 자리를 가졌다. 한 인사가 조 전 수석에게 ‘부산 출마로 내년 총선에 기여해야 되지 않냐’고 하자 조 전 수석은 손사래를 치며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이어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 곁에서 법무부 장관으로 검찰 개혁을 완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조 전 수석은 특별히 부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인사는 “출마보다는 장관직 권유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말 조 전 수석의 법무부 장관 유력설이 불거지자 여의도, 특히 여권의 시계는 벌써부터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으로 맞춰지는 듯하다. 현실 정치에 관심 없다는 조 전 수석의 손사래에도 정치권이 향후 조 전 수석의 행보를 놓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그리기 시작한 것. 민정수석의 법무부 장관 직행에 대한 반감 등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조 전 수석을 기용하려는 것이 여권의 차기 대선 플랜과 무관치 않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권에선 조 전 수석의 향후 행보를 놓고 ‘노무현 모델’과 ‘문재인 모델’까지 등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2000년 15대 총선에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가 낙마했다. 그러자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해 8월 그를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임명했다. 그가 재직한 기간은 2001년 3월까지 8개월. 노 전 대통령은 8개월짜리 장관직을 수행하며 행정 경험을 얻고 존재감을 키웠다. 대선 경선에서 ‘이인제 대세론’을 꺾고 새천년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자양분을 쌓은 것이다.
노 전 대통령처럼 조 전 수석이 내년 4월 총선 직전까지 6, 7개월가량 장관 경험을 쌓은 뒤 이를 토대로 대선 주자로 거듭날 것이라는 게 이른바 ‘노무현 모델’이다.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검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검찰 개혁이라는 훈장과 법무부 장관 명함으로 부산 출마나 비례대표 의원에 도전할 수 있다는 것.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도 최근 라디오에서 조 전 수석에 대해 “내년 1월 중이라도 패스트트랙이 통과되면 법무부 장관직을 던지고 총선에 출마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면 문재인 모델을 언급하는 이들의 시각은 달랐다. 문 대통령은 주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2009년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에도 현실 정치를 거부했다. 결국 2011년 말에야 뒤늦게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문 대통령처럼 주변에서 설득하고 강권하고 국민이 부르는 상황이 되어야 조 전 수석이 현실 정치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출마 기회는 내년이 아니라 이후 재·보궐선거도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핵심 당직자는 “조 전 수석은 아직 행정 경험도, 정치 경험도 없다. 적어도 2022년 대선에는 안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조 전 수석 외에 문 대통령의 지지층을 그대로 이어받을 수 있는 인물을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당에는 이미 이낙연 국무총리와 김부겸 의원 등 자원이 풍부하다. 아직 때가 이르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 전 수석의 과거에 대한 평가 없이 노무현 모델이든 문재인 모델이든 벌써부터 여권에서 조 전 수석의 미래를 거론하는 것은 정치공학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듯싶다. 대선을 거론하려면 최소한 사람들이 현 시점에서 원하는 시대정신을 제시하고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 보여줘야 한다. 단지 페이스북에 ‘죽창가’를 틀고 친일파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식의 정치적 선동으로는 어림없다.
민정수석 시절 장관급 인사 16명이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 없이 임명된 것과 민정수석이 법무부 장관으로 ‘직행’하는 것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도 어떤 식으로든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조 전 수석의 정치적 미래는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가 첫 시험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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