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여행 중 있었던 일을 쓰고 싶은데, 에세이 특성상 나와 주변 인물들이 드러나니 솔직한 마음을 쓰기가 주저된다고 했다. 혹시 당사자가 보는 게 걱정된다면 입장 바꿔 생각했을 때 괜찮을 정도로만 써 보라 했다. 그리고 혹시 서운한 마음이 있거들랑 살살 하라고.
“나 A랑 절교했잖아….” A는 한 시절 나의 베스트프렌드여서 친구와도 아는 사이다. “지금 감정은 어때?” “내가 버럭 화내서 끝났고, 그 아이도 답이 없어서 멀어졌는데, 지금은 가끔 같이 놀고 싶어….” “다시 말 걸어! 아티스트가 되라며! 리스크를 감수해야지!” 몇 달 전 내가 친구에게 했던 조언이다. 긴 여행을 끝내면 책을 쓴다기에 지금부터 당장 쓰라고, e메일로 독자를 모아 구독료를 받으며 연재하라고 했다. 그래야 자체 마감도 생기고 생생한 여행기도 나오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친구는 자기 글에 돈 낼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면서도 자꾸 할까, 해볼까 망설이기에 등을 떠밀었다. 위험을 감수하는 자만이 아티스트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이건 래퍼 스윙스의 유튜브 채널에서 들은 말이다. 래퍼였다가 현재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는 그는 요사이 솔직한 심정을 고백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랩 할 때 편안함을 느낀다고. 그건 자기가 아티스트에서 멀어지고 있는 거라고. 편하단 건 더 이상 예전만큼 위험한 걸 안 한다는 뜻이니까. 진정으로 예술을 한다면 발가벗겨지는 느낌이라던데, 우리 뇌는 우리가 그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단다. ‘야, 위험한 거 하지 마. 안전하게 살아. 리스크는 최소. 다치면 큰일 나.’ 그렇게 놓쳤던 기회들 얼마나 많을까.
순간 친구의 댄스학원 발표회에 갔던 날이 생각났다.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띄었다. 키가 180cm가 넘고 체구도 컸던 사람. 짧은 머리와 복장이 얼핏 보기엔 남자 같았지만 쉽게 판단할 수 없었다. 가수 선미의 ‘보름달’에 이어 엑소의 칼군무가 끝나자 걸그룹 노래에 맞춰 그가 등장했다. 도수 높은 안경에 헐렁이는 분홍 바지, 흰색 티를 입고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몸을 흔드는 모습까지. 13명 중 한 명이었지만 그 사람만 보였다. 낯설었으니까. 이런 춤과는 안 어울리는 사람 같았으니까.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같이 구경한 친구에게 넌지시 물으니 마찬가지 감정을 느꼈다고 했다.
그땐 그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그건 위험을 무릅쓰고 창피함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존경심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아티스트가 되는 순간, 아슬아슬하고 콩닥콩닥거리면서도 응원하게 되는 마음 말이다. 그의 존재가 발표회의 가장 뜨거운 순간이 될 줄은 그도 선생님도 몰랐을 거다. 우리 관객들만 아는 비밀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술가들을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위험한 짓을 자꾸 하니까. 사람들에게 자꾸 용기를 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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