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50만원 이상 아이템 팔면 영업정지 처분하며 게임산업 육성?”[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30일 03시 00분


리니지의 아버지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명작 영화처럼 청소년들이 인생작으로 꼽을 만큼 감동적인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두 팔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는 “영화도 초기에는 대접을 잘 못 받았지만 지금은 당당한 문화가 됐듯, 게임도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오면 인식이 바뀔 것”이라며 “우리가 그런 게임을 얼마나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명작 영화처럼 청소년들이 인생작으로 꼽을 만큼 감동적인 게임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두 팔을 한껏 치켜올렸다. 그는 “영화도 초기에는 대접을 잘 못 받았지만 지금은 당당한 문화가 됐듯, 게임도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오면 인식이 바뀔 것”이라며 “우리가 그런 게임을 얼마나 많이 만들려고 노력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이진구 논설위원
《세계보건기구(WHO)의 게임중독 질병 코드 등재를 국내에 적용하기 위한 민관협의체가 23일 국무조정실 주도로 출범했다. 업계에서는 2025년경부터 WHO 조치가 실제 국내 산업현장에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동안의 규제도 만만치 않았는데 게임업계로서는 엄청난 강적을 만난 셈이다. 국내 온라인 게임 1세대 개발자인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는 “게임에 마약처럼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는 건 안 맞는다고 본다”며 “업계가 명작이라 불릴 만한 좋은 게임을 계속 만들다 보면 나쁜 인식도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국내 온라인 게임 산업이 있게 한 바람의 나라(넥슨·1996년)와 리니지(엔씨소프트·1998년)의 개발자다. 》

―게임중독이 정확한 표현인가? 정립된 용어는 아닌 것 같은데….

“WHO가 쓴 용어는 Gaming Disorder(장애)다. 이를 우리는 게임중독이라고 많이 부르는데 정립된 용어는 아니다. 직역하면 ‘게임이용장애’이고, 업계에서는 ‘과몰입’이라고 부른다. 게임을 하다가 중단하는 게 잘 조절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이걸 ‘게임중독’이라고 부르니까 마치 게임 자체가 술이나 마약같이 엄청나게 해롭고, 한번 빠지면 절대로 헤어날 수 없는 듯한 인식을 준다. 안 그래도 인식이 안 좋았는데, 더 안 좋게 됐다.” (그렇다고 재미없는 게임을 만들 수는 없지 않나.) “개발자로서는 일종의 자기모순적인 상황인데…. 중독자처럼 게임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 건 부정할 수 없다. 단지 그들은 게임 때문에 그렇게 된 게 아니라 다른 원인이 있고, 게임은 그 도피처가 된 거라고 생각한다.”

※국무조정실은 게임중독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 게임이용장애로 쓰고 있다고 밝혔다.

―게임이 없더라도 다른 것에 빠졌을 것이라는 건가.

“한때 게임에 빠져 공부나 일에 지장을 받아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조금만 지나면 잊어버리고 일상에 복귀한다. 그걸 알코올이나 마약에 붙이는 중독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적당한지 모르겠다. 소수의 사람들 때문에 게임 자체를 매도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국내에 실제 적용되면 어려운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건 없고…, 업계에서 ‘게임은 문화다’라는 캠페인을 하고는 있다. 게임이 영화 같은 문화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우리도 수준을 올리자는 것이다. 무시당하지 않게…. 그러기 위해서는 명작 영화나 소설처럼 어릴 때 경험한 게임 때문에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감동을 주는 게임이 많이 나와야 한다. 아직은 그런 게임들이 많이 부족하다.” (‘달빛조각사’란 게임을 만들고 있는데 그 정도의 역작인가?) “하하하. 아직은 그렇지 않다. 인터뷰를 조금 망설인 것도 말과 만든 게임이 일치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걱정이 들어서였다. 단지 명작을 만들고 싶은 과정에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차세대 정보기술(IT) 유망 분야로 게임을 손꼽지 않은 정부가 없는데 규제는 많이 풀렸나.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하면서 국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동아일보DB
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코드에 등재하면서 국내에서도 찬반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동아일보DB
“게임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온라인 게임 월 결제한도 제한이 16년이나 유지되다가 지난달에야 폐지됐다. 온라인 PC게임의 1인당 월 결제한도를 50만 원으로 제한한 것이다.” (게임산업 육성이 언제부터 나왔는데 16년 동안이나 그런 규제가 있었단 말인가.) “더 우스운 게 그동안 PC만 규제하고 모바일은 안 했다. 모바일 게임에서는 금액과 관계없이 얼마든지 게임 아이템을 살 수 있었다.”

―형평성이 안 맞는데 왜 그런 건가.

“규제할 방법이 없으니까…. 모바일 게임에 결제한도 규제를 하려면 애플이나 구글에 요청해야 하는데 법적인 규제 근거도 미약하고, 다국적 회사들이 받아들일 리도 없기 때문이다.”

※온라인 게임 결제한도 제한은 온라인 게임의 사행성 논란이 일면서 2003년 업계 자율 규제로 시작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율규제였으나 사실상 정부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 자율규제라 법적 효력은 없지만 결제한도가 없는 게임을 만들 경우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등급을 허가하지 않는 식으로 규제했다.

―요즘은 같은 게임을 PC와 모바일 등 양쪽에서 다 즐길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나.

“그래서 국내 게임회사들이 조심해야 했던 게… 양쪽을 합쳐 50만 원을 넘으면 안 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 했다. 지키지 않았다가 걸려서 한 달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곳도 있다. 영업정지란 게임 이용 중지다. 큰 회사라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지만 작은 회사는 문을 닫을 수도 있을 정도의 처벌이다.”

※2015년 8월 NHN블랙픽의 온라인-모바일 연동 게임인 ‘야구 9단’에서 결제 초과가 발생했고, 당시 성남시는 영업정지 한 달을 내렸다.

―외국도 그런 월 판매액 한정 제도가 있나.

“내가 아는 선에서는 없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특히 학부모일수록 게임에 대한 생각이 아주 부정적이다. 아무것도 남는 것 없이, 인생에 도움도 안 되고, 시간만 낭비하는 것으로 본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1순위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됐고…. 그러니 ‘무슨 게임하는 데 50만 원씩 써’라고 생각하고, 제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다. 사실 기타 연주가 취미인 사람이 악보를 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운동복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게임하는 건 한심하게 보는 거지. 우리 아내도 내색은 안 하지만 내가 게임하고 있으면 좀 한심하게 보는 것 같기는 하던데…. 하하하. 당장 빠르게 개선될 인식은 아니고, 어려서 게임을 하면서 자란 세대가 기성세대가 되면 점차 변하지 않을까 한다.”

―다른 나라의 게임 규제에는 어떤 게 있나.

“중국을 제외하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중국에는 3시간 컷오프 제도가 있다. 한 가지 게임을 연속으로 3시간 이상 하면 얻은 점수를 절반으로 깎는 것이다. 근데 겉으로는 청소년 보호라고 했지만 사실은 게임 중 채팅 등을 통한 정보 유통을 차단하기 위해서가 더 큰 목적이라고 들었다.”

※중국은 2007년부터 시행한 3시간 컷오프 제도를 통해 18세 이하 청소년이 같은 게임을 연속으로 3시간 이상 하면 얻은 게임 점수의 절반을 차감하고, 5시간 이상이면 모든 점수가 사라지도록 하고 있다.

―국내 온라인 게임의 수익 모델이 아이템 판매 방식이다 보니 사행성 문제가 생기고 게임에 대한 인식도 안 좋아지는 것 아닌가.

“스타크래프트 같은 패키지 방식 게임은 한번 게임 CD를 사면 더 이상 돈을 지불할 필요가 없다. 지금도 북미와 유럽은 이런 방식으로 게임을 만들고, 시장도 이쪽이 훨씬 크다. 반면 우리와 중국에서는 P2W(pay to win·온라인에서 게임을 무료로 제공하고 대신 필요한 아이템을 사도록 유도하는 게임) 방식이 더 인기다. 매출도 이쪽이 훨씬 크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 (솔직히 게임 아이템에 왜 돈을 쓰나 하는 생각이 있다.) “우습긴 한데 나도 좀 그렇다. 하하하. 좀 옛날 사람인 데다 어렵게 자라서….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게임에 필요한 아이템을 사는 문화에 별 저항감이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투자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템을 안 사면 아예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게 만든 게임들이 돈은 더 잘 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달빛조각사도 그렇고 돈을 안 써도 할 만하게 만들려고 한다. 그 대신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돈을 주고 게임 아이템을 사는 행위가 당신이 만든 리니지에서 시작됐는데….

“1998년 리니지를 출시한 뒤 얼마 후 아이템을 사고판다는 말을 들었다. 아이템 판다고 속여 돈을 받고 잠적하는 신종 사기가 등장했다는 뉴스가 나오고….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만든 나조차 ‘진짜? 미친 것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말이 검이고 망토지, 사실 데이터베이스상의 01010101의 조합일 뿐인데 왜 이걸 돈을 주고 사는지 이해가 안 갔다. 당시 리니지는 월 2만7900원을 내고 이용하는 정액제로 아이템을 파는 게임이 아니었다. 그때는 아이템을 판다는 개념조차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저들이 지금 전 세계 온라인 게임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해준 셈인데…. 수요가 있으니 공급자가 생기고, 거래를 안전하게 중개해주는 아이템베이란 회사도 생겼다. 게임은 무료로 즐기되 필요에 따라 아이템을 사야 하는 부분 유료화 모델은 전 세계적으로 한국이 처음 개발한 거다.”

―좀 다른 얘긴데 직원들이 별로 대표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전에 한 신입사원이 자기소개 중에 ‘주인의식을 갖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해서 ‘주인은 난데 왜 당신이 주인의식을 갖느냐. 그저 임무에 충실하고 일찍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뭔가 굉장히 신선한데?) “직원에게 주인의식을 가지라는 건 좀 허위적인 것 같다. 내 귀에는 꼭 ‘월급은 더 줄 수 없지만 일은 많이 해 주세요’란 의미로 들리기도 하고…. 물리적으로 실력도 체력도 부족한데 정신력으로 버티면 된다고 강요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인가? 좀 자유롭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게임중독#질병 코드 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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