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한국의 자유민주주의[동아 시론/박지향]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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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권력 집중-경제 간섭 심화… 자유와 창의성, 혹은 통제와 평준화
우리 사회는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해야 한다고 헌법은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상황은 헌법을 따르는 것 같지 않다. 연전에 있었던,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제거하려던 좌파세력의 시도에서 보듯 자유민주주의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국민은 물론이고 정치인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무엇인지 알아야 추구할지 말지를 결정할 것 아닌가.

문재인 정부의 주요 지지 기반인 민노총과 전교조는 강경 좌파들이 다수를 이루는 것 같지만 현 정부의 전반적인 정치적 성향은 사회민주주의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의 특성 가운데 가장 뚜렷한 것은 국가의 비대화다. 개인을 신뢰하지 않기에 개인의 선택권을 줄이고 권력을 국가에 집중하려 한다. 경제도 정부가 간섭하고 통제해야 하고, 무엇보다도 높은 세금을 통해 평준화를 실현하려 한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지향점이 뚜렷한 데 반해 자유한국당은 목표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비록 ‘자유’를 당명에 사용하고 있지만 그 자유는 단지 북한의 전체주의 정권에 대항하는 의미에 멈춰 있을 뿐이다. 그들은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지만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른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자유민주주의는 19세기 말에 이르러 서양 역사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발전적으로 통합한 개념이다. 근대 서양은 오랜 자유주의 시대를 거친 후 민주주의로 이행했는데 자유주의는 근대사회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모든 가치 가운데 자유, 특히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다. 자유란 무엇인가? 가장 단순하게는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받지 않는 것이며 자신의 삶을 본성에 따라 원하는 대로 영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자유주의가 16세기 이후 개인을 정치적, 신분적, 종교적 속박에서 해방시켰고 유럽이 치고 나가 세상을 장악하는 데 일조했다. 자유주의자들은 재능 있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모든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을 마음껏 구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피와 땀을 흘렸다. 출신이 한미한 나폴레옹이나 베토벤이 최고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해방의 이데올로기였던 자유주의 덕분이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역사에는 자유주의 시대가 없었다. 우리는 전제왕정에서 식민지를 거쳐 곧장 민주주의로 직행했기 때문에 자유주의 시대를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 역사에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시대는 없었다. 개인의 자유가 싹틀 즈음 우리는 식민지가 되었고 개인의 자유는 민족의 자유에 함몰되어 버렸다. 해방 후 우리는 민주주의로 직행했는데, 불행히도 민주주의는 자유주의만큼 자유를 중시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와 평등을 민주주의의 두 기둥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냉철히 분석하면 자유와 평등이 항상 양립 가능한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그 냉엄한 사실을 잘 보여주었다. 혁명을 시작한 자유주의자들과 자코뱅으로 대표되는 민주주의자들은 피 터지게 싸웠고 결국 나폴레옹의 독재에 굴복했다. 19세기를 통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각기 분리된 길을 갔는데 영국 같은 정치 선진국에서 두 이념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평화적으로 결합하게 된다. 자유주의자들이 민주주의에서 가장 우려한 것은 다수의 횡포와 획일성, 개별성의 억압이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자율형사립고 논란을 보더라도 자유와 평등의 양립이 어렵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기억할 점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가 의미하는 바는 권력을 억제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킨다는 것이다. 국가권력은 사회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신성하고 공정한 게 아니라 타락과 이전투구의 속성을 갖는다. 게다가 국가권력이 비대해지고 사람들이 그에 의존하는 데 익숙해지면 시민은 나약해지고 국력도 허약해진다. 이제 자유를 소중히 여기는 국민은 사회민주주의에 대항하는 대통합을 이루어야 한다. 우리 국민도 두 개의 가치 가운데 어느 것이 더욱 소중한지를 심각하게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유모 국가(nanny state)’에 의존해 그 나름대로 편하게 사는 게 좋은지, 아니면 내 자유 의지와 창의성을 발휘하여 내 삶을 적극적으로 영위할 것인지. 평준화를 택할 것인지, 아니면 정당한 방법으로 더 열심히 일한 사람이 더 많이 보상받는 사회를 원하는지. 국민의 선택에 따라 대한민국의 정체는 자유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고 사회민주주의가 될 수도 있다. 당장 급선무는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추구하는 정당의 출현이다. 지금의 자유한국당으로는 어림도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진정 이 땅에 정착할 수 있을지, 암담할 뿐이다.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자유민주주의#민주노총#전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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