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홍콩 정부가 범죄인 인도법을 추진한다고 했을 때부터 이민을 생각했어요. 올해 5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하자 더는 기다릴 수 없다는 급박함이 생겼죠. 대만 이주를 바로 행동에 옮겨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홍콩대 정보기술 전공 교수 출신으로 현재 학원을 운영 중인 레이먼드 신 씨(44)는 지난달 28일 홍콩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왜 대만 이민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아내, 열 살 난 딸과 이번 달 대만으로 떠난다. 대만 현지에 집은 구했지만 아직 새 일자리는 찾지 못했다. 그는 “수입이 더 적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홍콩을 서둘러 떠나려는 이유가 궁금했다. 신 씨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있다면 생활수준이 지금보다 낮아져도 받아들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은 우리에게 안전감을 주는 고향이었는데 지금 그 안전감을 위협받고 있어요. 홍콩 정부는 표현의 자유, 민주 선거를 원하는 홍콩 시민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정치, 사회가 불안정한 홍콩에 남는 건 위험합니다.”
‘그럼에도 고향을 떠나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다’고 물어보니 “내 아이, 다음 세대가 자유롭고 민주주의가 있는 곳에서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단호했다.
이민 컨설팅 업체가 이날 홍콩의 한 호텔에서 개최한 대만 이민설명회에 홍콩인 100여 명이 몰렸다. 준비한 의자가 부족해 사람들이 뒤에 서야 할 정도였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20∼40대 젊은 부부들이 많았다. 대만 내정(內政)부 이민처에 따르면 올해 6월까지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인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4% 증가했다. 이런 추세면 올해 대만 이민자 수는 1997년 홍콩 반환 전 홍콩인들의 엑소더스 때인 1500∼1600명대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설명회를 연 컨설팅 업체의 로이 람 이사는 “최근 대만 이민 상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인도법 반대 시위 이전엔 한 달에 한 번 설명회를 열면 30∼40명이 왔지만 지금은 한 달에 4번을 열어도 매번 100여 명이 참가한다고 했다. 그는 “과거 이민 상담은 나이 많은 은퇴자들이 주로 많았지만 지금은 젊은이들이 많다. 중국을 좋아하지 않는 젊은층이 홍콩에 미래가 없다고 보고 홍콩과 가까우면서도 자유민주 체제인 대만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순민·폭민·이민” 홍콩 신(新)삼민주의
신 씨는 “지난달 21일 홍콩 위안랑에서의 ‘백색 테러’ 이후 나와 가족들의 안전이 걱정돼 하루 3, 4시간밖에 잠을 못 잘 정도로 힘들다”고 했다. 그는 시위대를 지지하지만 시위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정부와 경찰에 실망했고 젊은이들을 생각하면 괴롭다. 마음이 매우 복잡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를 보며 이민 결정을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도 고향인데 아쉽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아쉬운 마음이 없다. 이는 매우 슬픈 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주변 친구들 모두 대만이 아니더라도 캐나다 호주 등으로 떠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어머니, 10대 남동생과 함께 설명회장을 찾은 키티 훈 씨(23·여)는 ‘왜 대만으로 가려느냐’는 질문에 “그것보다 당장 홍콩을 떠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 경찰이 시민들을 보호하지 않아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어머니 에이미 초 씨(56)는 “홍콩이 중국이 되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피아노를 가르치는 빈센트 입 씨(42)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아내, 9세 5세 자녀와 대만으로 갈 계획이다. 그는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정부는 우리 권리를 한발 한발 조이며 통제해 왔다”며 “내 아이가 자유를 잃는 걸 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홍콩인들은 순민(順民) 폭민(暴民) 이민(移民)의 새로운 삼민주의를 얘기한다”며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쑨원이 제창한 삼민주의는 민족주의, 민권주의, 민생주의다. 하지만 홍콩의 신(新)삼민주의는 ‘홍콩의 현재에 순응하거나 저항하지 않으면 이민을 선택해 떠날 수밖에 없다’는 홍콩 시민들의 절망적 상황을 풍자한다.
○ 경제 피폐하게 한 홍콩의 중국화
홍콩 시민들의 탈출 행렬에는 정치적 이유와 함께 살인적인 집값, 집세, 물가 등 경제적 이유도 크다. 본토에서 몰려온 중국인들이 홍콩인들의 삶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반감이 상당하다. 사회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홍콩의 지니계수는 2016년 0.539를 기록해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인 0.5를 넘어섰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인들의 평균 임금은 남성 1만9100홍콩달러(약 288만 원), 여성 1만4700홍콩달러인데 홍콩 도심의 방 한 칸짜리 다세대주택 월세가 1만6551홍콩달러에 달한다. 매달 수입이 약 2만 홍콩달러인 레이먼드 신 씨는 월세가 2만 홍콩달러인 800평방피트(약 74m²) 집에서 살고 있다. 아내의 수입이 없으면 생활이 어렵다.
지난해 6월 대만으로 이주한 뒤 홍콩 이민업체의 대만지사에서 일하는 라우와이나 씨(32·여)를 지난달 30일 타이베이(臺北)에서 만났다. 그는 “2017년 결혼했지만 월세를 마련하지 못해 대만으로 오기 전까지 남편과 각자 부모 집에서 따로 살았다. 너무 슬펐다”고 말했다. 그는 “대만에서의 삶은 생활이지만 홍콩에서는 생존이었다”며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몰려 집을 사면서 젊은이들이 집세를 낼 수 없는 수준으로 가격이 올랐다”고 주장했다.
빈센트 입 씨는 “홍콩 반환 이후 매일 150명의 중국인이 중국 장기체류 비자를 받아 홍콩에 정착했다. 20여 년간 100만 명이 온 것이다. 홍콩 정부는 이들을 막거나 심사할 권한조차 없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그 결과 홍콩 인구 700만여 명 중 7분의 1을 돈 많은 중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것. 그는 “이들이 집값과 물가를 올려 홍콩 주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며 “영국 식민지 때는 능력이 있으면 성공 가능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중국과 인맥 등 관계가 조금도 없으면 어렵다”는 인식을 보였다.
이 와중에 ‘홍콩의 중국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1997년 홍콩 반환 당시 증시 시가총액 기준 중국 기업 비중은 20%에 미치지 못했다. 현재 이 수치는 60%에 달한다.
○ “우리는 사실상 정치적 난민”
홍콩 퉁뤄완 서점 주인이던 람윙키 씨(64)는 올해 4월 홍콩 정부가 인도법을 통과시키려 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끼고 대만으로 피신했다. 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지도부를 다룬 책을 출판했다가 2015년 중국 당국에 붙잡혀 5개월 동안 억류된 뒤 홍콩으로 돌아와 이를 폭로했다. 그처럼 언제든 중국 당국의 억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홍콩인들의 공포는 인도법을 반대한 홍콩 대규모 시위의 배경이었다.
지난달 30일 타이베이 시내에서 만난 그는 “홍콩인들은 저항하거나 시 주석 의사에 통제당하는 갈림길에 놓여 있다. 시 주석의 권력이 너무 강해서 홍콩의 장래는 더욱 나빠질 것이다. 마지막 출로는 홍콩을 떠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유학하다 방학을 맞아 홍콩에 잠시 온 융납탁 군(18)은 졸업 뒤에도 홍콩에 돌아올 생각이 없다. 그는 “홍콩의 친구들을 만나봤더니 여력이 되는 가정은 홍콩을 떠나지만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떠나고 싶어도 홍콩에 남을 수밖에 없다더라”며 고개를 떨궜다.
라우와이나 씨는 “이전에는 더 나은 생활을 위해 대만에 왔지만 지금은 홍색(중국)의 홍콩 침입을 원하지 않는 홍콩 시민들의 정치적 탈출이라고도 볼 수 있다”며 “어떤 이민이든 사실 정치적 난민의 한 종류다. (일찍 떠난) 나는 운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레이먼드 신 씨에게 ‘중국은 홍콩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일국양제(一國兩制)를 강조한다’고 말하자 헛웃음을 지으며 “이미 일국양제는 없다. 일국일(一)제”라고 꼬집었다. 그에게 ‘일국양제가 끝나는 2047년 홍콩 엑소더스가 현실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을 건네자마자 돌아온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엑소더스는 이미 시작됐어요. 이미 이곳에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희망이 철저히 사라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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