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계에선 ‘노무라의 예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4월 노무라증권이 올해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국내외 기관 중 가장 먼저 1%대(1.8%)로 끌어내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당시는 일본의 경제 보복이 표면화되기 전이어서 대다수 경제연구기관들이 2%대 중반의 성장률을 예상하고 있던 때였다.
지금 와서 다시 곱씹어보면 이 예언은 두 가지 측면에서 여전히 흥미롭다. 하나는 하필 일본계 금융회사가 한국 경제에 대한 비관론의 선두 주자가 됐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 나오는 얘기가 있다. 노무라가 과감하게 성장률을 낮춘 것이 자국 정부의 수출 규제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결과가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근거 없는 추측일 뿐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노무라가 이전에도 여러 차례 한국을 부정적으로 보며 우리를 놀라게 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1998년 10월 노무라증권 서울지점에서 나온 4쪽짜리 리포트다. ‘대우그룹에 비상벨이 울리고 있다’는 제목의 이 보고서가 나온 지 열 달 뒤 실제로 대우는 산산조각이 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초다. 노무라는 그해 한국의 성장률이 ―6%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충격적인 전망을 냈다. 당시 직접 기사를 쓰면서 내 눈을 의심하고 거듭 확인을 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그러나 10년 전 노무라의 예측은 다행히도 크게 빗나갔다. 금융위기의 충격으로 대부분 국가들의 성장률이 뒷걸음질하던 그해, 한국은 오히려 소폭 플러스 성장(0.8%)을 했다. 우리 경제의 부정적인 면을 애써 부각시켰던 외신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한국은 위기 극복의 모범 사례”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는 어떻게 될까. 안타깝게도 노무라가 이번에는 뭔가 제대로 짚은 분위기다. 이제는 ING그룹(1.4%), 모건스탠리(1.8%) 등 외국계는 물론이고 한국은행과 국내 기관들마저도 (비관적 시나리오를 전제로) 1%대 성장률을 경고하고 있다. 게다가 이 중 상당수는 앞으로 일본의 2차 보복을 계산에 반영해 전망치를 더 떨어뜨릴 태세다. 그 폭이 보수적으로 잡아도 0.2∼0.5%포인트 정도라고 한다.
만약 이 추세대로 1%대 성장률이 확정된다면 이는 한국 경제가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 된다. 지금까지 우리 성장률이 2% 아래로 떨어진 것은 석유파동이나 외환위기처럼 경제 시스템에 초대형 쇼크가 생겼을 때뿐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렇게 둘러댈 핑곗거리조차 없다. 정부는 일본발 악재나 추경 지연 처리 등을 거론하며 어떻게든 남 탓을 할 가능성이 높지만 성장잠재력 훼손은 이미 그전부터 현실화되고 있었다. 세계 평균과의 성장률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해외에서 날아드는 비관론은 때때로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살피고 잘못된 정책을 가다듬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부와 정치권이 보여준 행태는 그런 정제된 대응보다는 거친 비난과 변명, 책임 공방에 더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노무라의 예언은 언제라도 계속 반복되며 우리의 숨통을 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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