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전구가 레몬에 꽂혀 있다. 호기심 많은 어린아이의 장난일까 싶지만 20세기 독일 미술의 거장 요제프 보이스의 작품이다. 심지어 그가 말년에 제작한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다. 거장은 왜 노란 전구의 소켓을 콘센트가 아닌 레몬에 꽂은 걸까?
이유는 단 하나, 노란 불빛을 내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다. 말도 안 되는 엉뚱한 발상 같지만 보이스는 이 작품을 통해 현대문명의 생태학적 조화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는 이 배터리가 예술과 자연, 과학의 융합을 의미하며 이렇게 얻은 새로운 에너지가 더 나은 사회를 창조할 수 있다고 믿었다. 1985년 보이스는 200개가 넘는 레몬 배터리를 만들었다. 당시 그는 폐질환으로 요양차 이탈리아 남부 지중해의 카프리섬에 머물고 있었다. 전구의 밝은 노란색은 카프리섬에서 본 활기 넘치는 환경과 지중해의 밝은 햇살을 상징한다. 병으로 죽어가면서도 그는 노란 레몬 전구처럼 강렬하고 따뜻한 에너지가 넘치는 밝은 세상을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작품에 수반되는 지시사항에는 ‘1000시간마다 배터리를 교체하라’고 적혀 있지만 전구는 절대로 켤 수 없기 때문에 교체할 일도 없다. 이는 자연에서 나온 에너지를 아끼고 잘 사용해 영구 순환되게 하자는 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작품은 작가의 평생 관심사였던 에너지, 따뜻함, 치유 그리고 환경에 대한 관심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독일 최초 환경정당인 녹색당의 창립 발기인으로 활동할 정도로 환경운동에도 깊이 관여했던 그는 예술과 삶의 일치를 추구했던 적극적인 행동주의 예술가였다.
‘모든 사람은 예술가’라고 주장한 보이스는 레몬 전구처럼 고정된 예술 개념을 거부하고 예술과 일상, 자연과 문화의 경계에 도전한 수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스스로를 무당으로 부르며 미술을 통해 개인과 사회의 상처를 치유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했지만 작가 자신은 에너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카프리 배터리 제작 1년 후 6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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