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미국 고급 백화점 바니스 뉴욕의 고위 여성 임원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기 위해 서울에 온 길이었다. 온라인으로 더욱 치열해진 경쟁 속에 바니스에서만 파는 ‘단독 상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패션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입점하고 싶어 하는 ‘꿈의 백화점’ 바니스조차 온라인의 도전과 젊은 고객의 부재에 대한 고민이 깊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바니스가 결국 6일(현지 시간) 파산했다. 미국 내 22개 매장 중 15개가 문을 닫게 됐다. 나머지 매장은 법원 관리하에 새 투자자를 찾는다. 온라인의 공세와 높은 임대료 상승에 결국 두 손을 든 것이다.
바니스는 1923년 문을 연 뒤 96년 동안 미국 럭셔리산업 성황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미국 시장도 동요했다. 바니스는 1970년대 미국 사회에 이탈리아의 조르조 아르마니 식 맞춤 정장을 소개했다. 미국식 표현으로 ‘쿨한’ 브랜드 그 자체였던 바니스마저 파산 대열에 끼었으니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도 주요 기사로 다뤘다.
미국은 한국보다 오프라인 유통의 하락세가 더욱 빠르다. 시어스, 토이저러스 등 미국 전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매장들도 모두 파산 수순을 겪었다. 그런데도 바니스의 파산이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럭셔리는 괜찮다’는 믿음을 깨버렸기 때문이다. 그간 온라인 소비자는 가격에 민감해 중저가, 생필품 시장 위주로 영향을 받을 거라고 봤다. 시어스는 중저가 백화점이었고, 토이저러스에서 파는 장난감은 온라인에서 가격 비교로 살 수 있다.
하지만 바니스는 ‘차별화’가 명확한 패션 백화점이었다. 바니스만의 쿨한 감각으로 골라놓은 컬렉션이 특징이었다. 수백만 원짜리 옷도 아무렇지 않게 입는 이들이 핵심 고객이었다. 매장도 남달랐다. 아마존이 탄생하기 딱 2년 전인 1993년에 뉴욕 매디슨 애비뉴에 바니스가 세운 웅장한 건물은 건축가 피터 머리노가 디자인했다. 머리노는 이후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루이비통 매장부터 한국의 분더샵까지 디자인하며 패션 전문 건축가로 지금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하지만 바니스의 성공법칙은 디지털 경제와 밀레니얼 세대의 등장에 ‘구문’이 됐다. 밀레니얼 세대는 바니스가 공들인 컬렉션보다 소셜미디어에 등장하는 인플루언서의 ‘코디’에 더 열광했다.
까르띠에 등을 소유한 리치몬트의 ‘네타포르테’와 영국의 ‘매치스패션’ 등 온라인 럭셔리 사이트는 수백만 원짜리 옷, 수천만 원짜리 시계도 온라인에서 팔린다는 걸 증명했다. 아무나 쉽게 못 들어갈 것 같은 ‘콧대 높은’ 분위기도 밀레니얼 세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목이 좋은 값비싼 매장도 부담이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매디슨 애비뉴의 바니스 매장 임대료는 연간 1600만 달러(약 194억 원)에서 3000만 달러로 수직상승했다. 물론 바니스는 매디슨 매장은 남겨둘 예정이다. 이제 매디슨 매장은 미국 럭셔리의 상징일 뿐 아니라 디지털 경제의 매서운 힘을 보여주는 아이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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