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허리와 팔다리가 아프다고 하시는데 퇴행성관절염입니다.” 강원 춘천시 보건소 황모 의무과장이 화상시스템 속 최모 할머니를 진찰하고 진단을 내린 뒤 동네 진료보건소 간호사에게 처방전을 띄웠다. 배를 타고 소양강댐을 건너 다시 버스를 타는 등 3, 4시간이 걸리는 보건소 방문 대신 집 근처서 약을 탈 수 있게 된 최 할머니 사연을 다룬 이 기사는 원격의료를 다룬 최근 기사가 아니다. 1999년 6월 ‘춘천 오지마을 첫 영상진료’라는 연합뉴스의 보도다. 당시에도 가능했던 원격의료는 20년 동안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한 채 원점을 맴돌고 있다.
▷20년 동안 3개 정부가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했다. 하지만 대형병원 쏠림 현상이 심해지고 동네의원들이 몰락할 것을 우려한 의료계 반발을 넘지 못하고 그저 시범사업으로 끝났다. 현 정부도 지난달 23일 강원도를 의료법상 원격의료 규제를 면제받는 ‘디지털헬스케어’ 규제자유특구로 지정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와 환자 간이 아닌 의사끼리만 원격의료를 허용한다. 이 예외로 도서벽지 같은 격오지(隔奧地), 군부대, 교도소 등만 뒀다. 규제자유특구에선 고혈압·당뇨 재진환자가 집에서 의사로부터 원격진찰을 받고, 간호사가 방문하면 원격진단과 처방도 가능하다.
▷이 원격의료 사업에 동네의원만 참여하도록 했는데 단 한 곳이 응했다고 한다. 강원도의사회는 “원격의료의 문제점을 홍보했지만 불참을 강요하지는 않는다”고 선을 그었지만 아무래도 서로 동료 의사들의 눈치가 보였을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우리나라처럼 병원 근접성이 뛰어난 곳에서 원격의료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한다.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아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할 수 있고,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의료기기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 오진의 책임 소재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 단지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기술 발달 속도가 빨라도 너무 빠르다. 만성질환자의 스마트폰에는 투약 및 식생활 기록이 꼬박꼬박 남는다. 의사가 구글 글래스를 착용한 구급요원이 보내는 영상을 보며 응급조치를 한다. 2월 세계 최대 모바일 행사인 ‘MWC19 바르셀로나’에선 세계 최초로 5km 떨어진 환자에 대한 원격수술이 시연됐다. 5세대(5G) 이동통신 시대에는 응급 상황에서도 실시간 원격수술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의 인공지능(AI) 의사 왓슨의 진단은 얼마나 정확한가. 자칫 강원도 규제자유특구 실험조차 무산된다면 이런 기술혁명 속에 우리만 ‘의료 갈라파고스’에서 살게 될까 우려스럽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