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의 취임식 중계 시간부터 차기 대선 논의가 시작되는 미국에서는 2020년 대선을 앞두고 24명의 민주당 정치인들이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 선거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무더위 가운데 벌어진, 지난달 31일 CNN 민주당 후보 토론회에서는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전반적으로 친환경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는 민주당 후보들답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후퇴시켜 놓은 이산화탄소 저감 국제공조와 미국 내 청정에너지 장려정책을 적극 수행하겠다는 공약을 한결같이 펼쳤다. 지구 온난화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에 출마했다는 제이 인슬리 워싱턴주 주지사는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지구는 기후 재앙에 빠져들 것이라는 암울한 주장을 내놨다.
수학을 좋아하는 (논리적인) 아시아계 미국인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는 최적의 상대라며 대선에 뛰어든 사업가 앤드루 양은 지구 온난화에 다소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의 주장은 미국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의 15%만을 차지하며 배출을 줄인다 해도 개발도상국들의 이산화탄소 배출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비관론이었다. 이를 근거로 그는 탄소 배출을 줄이는 노력과 함께 저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고지대로 이주시키는 등 기후변화 적응에 대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앤드루 양의 이런 입장은 기후변화에 대한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기후변화와 이에 대한 적응은 피할 수 없는 현실임을 반영하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의 대기 중 체류시간이, 지금 이산화탄소의 배출을 멈춰도 이 농도가 35% 수준으로 줄어드는 데 필요한 시간이 100년 정도로 매우 길기 때문이다. 반대로 초미세먼지 유발 물질의 체류시간은 대부분 2, 3일 정도로 짧다. 즉, 인류가 산업 활동을 완전히 멈춘다면 대기오염은 일주일 안에 지구상에서 사라지겠지만 지구온난화는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1995년 대기화학 연구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파울 크뤼천 박사는 상층대기(성층권)에 하얀색 미세입자들을 뿌려 태양광을 반사시켜 지구를 식힐 수 있다는 의견을 2006년 학술지 ‘기후변화’에 발표했다. 많은 사람들이 1994년의 무더운 여름만을 기억하지만 1993년 여름은 세계적으로 이상저온으로 기록된 해인데 그 이유는 1991년 폭발한 필리핀 피나투보 화산의 화산재, 특히 태양 복사의 주요 에너지 파장인 가시광선을 반사시키는 하얀색 황산 입자가 성층권을 감싸 태양광을 반사시켰기 때문으로 해석되고 있다. 실제로 하버드대에서는 이러한 지구 온난화의 대책으로 꼽히는 지구공학에 대한 과학적, 정책적, 국제관계적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조직이 활동하고 있다.
물론 더운 여름에 지쳐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접한다면 귀가 솔깃할 수도 있겠지만 잠시 곱씹어 봐야 할 몇 가지 문제들이 있다. 지구공학 문제를 논의하면서 크뤼천 박사는 지구공학이 석유나 석탄을 펑펑 써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로 연결되는 것을 강하게 경고했다. 무엇보다도 지구적으로 일사량이 줄어들게 될 때 생태계나 식량 생산에 어떠한 영향을 줄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또 과연 적절한 온도를 누가 결정해야 할지도 큰 문제 중 하나다. 추운 나라들은 온도를 내리는 게 그리 탐탁지 않을 것이고 더운 나라들은 기왕 하는 것 온도를 더 내리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지구 온난화가 재앙 수준에 다다르게 된다면 당장 탄소 배출을 멈춰도 지구 온난화의 효과는 지속될 것이니 이럴 때를 대비한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할 것을 크뤼천 박사는 주문했다.
종종 가까운 독자들에게 너무 의견 없이 사실만 나열한다는 불평을 듣곤 하는데 지구공학 문제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견을 남기려 한다. 기후변화 적응은 물론 필요하지만 지구시스템을 통째로 뒤흔드는 지구공학은 절대 수행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더 나아가 유발 물질 배출만 줄이면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미세먼지 문제에 있어서, 인공강우 혹은 실외 공기청정기 등의 실현 불가능한 적응 대책 또한 더 이상 사회적 논의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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