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이 생각만큼 잘 안 되는 진짜 이유[오늘과 내일/이승헌]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13일 03시 00분


자기 인생에 대한 확신, 도그마에 갇혀
黃만의 새 메시지 못 만들면 더 큰 위기

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하∼∼∼.”

얼마 전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주변 인사에게 전화를 했더니 긴 한숨이 들렸다. 계속 말이 없기에 전화가 끊긴 줄 알고 “여보세요?”라고 되묻기도 했다.

―무슨 특별한 일이라도…?

“대표님이 잘해 보려고 하는데, 어렵네요. 언젠가는 잘되겠죠? 그렇죠?”

요즘 한국당 사람들이 황 대표에 대한 걱정이 많다. 황 대표를 간판으로 내년 총선과 2022년 대선을 치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황 대표의 대선 주자 선호도 추이도 이런 걱정을 부채질한다. 지난주 리얼미터 조사에선 2월 취임 후 처음으로 20%대가 무너졌다.

황 대표와 함께할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그의 정치적 감수성, 콘텐츠 부족을 문제 삼는다. 엉덩이 댄스 논란을 시작으로 청년들에게 아들의 취업 스토리를 버젓이 전한 게 대표적이다. 취임 6개월이 다 되도록 내세울 정치적 상품이 없다는 말도 들린다.

그런데 황 대표 걱정할 때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감수성, 콘텐츠 부족이 정말 문제의 핵심일까. 이걸 갖추면 보수의 고민은 사라질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우선 감수성. YS 이후 최근 한국당이나 그 전신 정당 출신 대표나 대통령 중 정치적 감수성이 탁월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대쪽 총리’ 이회창부터 이명박 박근혜까지, 감수성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감수성은 진보세력들이 비교 우위를 갖는 영역. 초 단위로 돌아가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 보수세력은 어지간해선 만족스러운 감수성을 선보이기 어렵다. 콘텐츠는 정치인들을 비판할 때 가장 ‘편하게’ 꺼내 드는 소재. 하지만 DJ, JP 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콘텐츠에 자신 있어 할 정치인은 현재 대한민국에 없다. 걱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별 생각 없이 레토릭과 관성에 사로잡혀 있다.

오히려 황 대표의 진짜 문제는 2019년 8월 지금 집권세력과 차별화된 제도권 보수세력만의 메시지 부족에 있지 않나 싶다. 황 대표가 최근까지 주요 이슈에 대해 밝힌 입장은 ‘황교안 메시지’라기보다 문재인 정부나 김정은에 대한 리액션에 가깝다.

“총체적 안보 붕괴 상황에 대한 대통령의 입장 표명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다.” 황 대표가 북한의 미사일 도발 직후인 10일 긴급회의에서 한 말이다. 안보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할 법한 말이다. 이 정도 메시지로는 문재인이라는 ‘정치 함수’에서 종속 변수를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미국의 현 집권세력이 보수인 만큼 워싱턴으로 가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겠다고 했으면 어땠을까.

사람들이 집권세력에 아쉬워하는 걸 파고들어 그 대안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겉돈다. 대통령 비서를 법무부 장관으로 보내는 내로남불이 저급하다면 비난을 넘어 보수만의 품격을 궁리해야 한다. 미국 보수의 상징인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 1984년 73세로 재선에 도전했을 때 월터 먼데일 민주당 대선후보(당시 56세)와의 TV토론에서 나이를 문제 삼자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다는 사실을 정치적 목적으로 선거 기간 중 이용하지 않겠다.” 먼데일도 웃어 버렸고, 선거는 이걸로 끝났다.

물론 사람은 잘 안 바뀐다. 국무총리와 대통령 권한대행까지 지낸 성공한 자기 인생에 대한 확신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으면 거기까지다. 황 대표 혼자 다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은 당도 그의 변화를 도와야 한다. 아직도 친박 비박 타령하며 팔짱 낀 채 황 대표가 쓰러지길 기다리거나 벌써 비대위를 거론하는 건 보수세력 전체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지금 상황에서 황교안이 좌초하면 혼자만 망할 것 같은가.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황교안#한국당#보수세력#도그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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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83

추천 많은 댓글

  • 2019-08-13 08:13:07

    동아와 이승헌기자는 일반국민과 동떨어진 여론을 의도적으로 만들려고 하는것 같다 대다수의 국민이 바라는 것은 황교안의 탁월한 입담이나 혀놀림이 아니다 ~ 좌파정권의 종식을 국민들은 원한다. 그 목표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황교안이고 반드시 달성하리라 믿고 있는것이다

  • 2019-08-13 05:42:42

    황이 실패하고 있는 이유는 명백하다. 기자도 알면서 말않는다. 자신의 정치적 소신이 없다. 정의를 찾는 검찰출신이 탄핵에 대한 입장을 정리 못하고 있다. 황이 문을 비판하는 수준은 우파시민은 누구든지 할 정도에 불과하다. 더욱이 투지가 없다. 지금은 장수가 필요할 때다

  • 2019-08-13 09:25:05

    탄핵 사유를 충족 못시킨 졸속 탄핵이었다. 당시 야권 국회의원, 강성노조, 언론, 김무성 세력이 사욕을 갖고 추진한 탄핵은 결과적으로 문재앙을 출현시켰다. 탄핵을 덮고는 한걸음도 못나간다. 탄핵세력 회개하고, 비탄핵세력도 정권 못지킨 잘못 반성해야 우파 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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