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광복 74주년 경축사에서 ‘반일’보다는 ‘극일’을 다짐하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문 대통령은 최근 한일 갈등의 핵심 주제였던 강제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면서 일본을 향해 “지금이라도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우리는 기꺼이 손을 잡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최악의 대결 상황으로 치달아온 한일관계의 흐름을 가를 분수령으로 주목받아온 8·15 메시지에서 문 대통령이 신중한 자세를 취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5월 즉위한 나루히토 일왕이 어제 종전기념일 메시지에서 “전쟁에 대한 깊은 반성”을 언급하며 “같은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첫 ‘전후세대’ 일왕이 처음 내놓은 과거사 관련 메시지에서 ‘반성’을 강조한 것은 의미가 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어제 추도사에서도 역대 총리들의 부전(不戰)의지를 빌려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7년째 고수했다.
하지만 그런 아베 총리도 12일 고향 야마구치에서 시모노세키시와 부산시의 교류가 중단됐다는 보고를 듣고는 “양국의 민민(民民) 간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문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우리 국민이 일본의 경제보복에 성숙하게 대응하는 것은 두 나라 국민들 사이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라고 강조했듯이 한일 갈등이 민간 교류 차원까지 악화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한일 갈등이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속단할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양국 지도부가 8·15라는 중요한 분기점에서 확전을 자제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당장 공식 대화를 복구하긴 어렵다 해도 갈등의 확산 대신 마찰을 줄여나갈 대목들을 찾아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내년 도쿄 올림픽에 대해 “세계인들이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와 협력의 희망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한 것은 국내 일각의 보이콧 목소리를 차단한 것으로 평가된다.
확전을 자제하고 속도조절에 들어간 현재의 기류가 더 확산되어야 한다. 양국 정부와 정치권은 형식에 구애받지 말고 대화와 협력의 실마리를 찾고, 민간 교류가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일본의 역사 직시와 반성, 강제 징용 배상 등 난제 해결을 위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서로의 감정을 상하게 할 불필요한 자극은 삼가야 한다. 공존 공생을 위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대화해 미래를 위한 대승적인 길을 찾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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