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게 드리운 레이건의 그늘[글로벌 이슈/구가인]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21일 03시 00분


1987년 백악관 환영행사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왼쪽)과 악수하는 41세의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레이건에 대한 존경과 과거 인연을 밝혀왔지만, 레이건 측은 둘의 사진 외에 레이건 전 대통령이 생전에 트럼프를 언급한적은 없다고 밝힌 바있다. 사진출처 로널드레이건대통령도서관
1987년 백악관 환영행사에서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왼쪽)과 악수하는 41세의 도널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전 레이건에 대한 존경과 과거 인연을 밝혀왔지만, 레이건 측은 둘의 사진 외에 레이건 전 대통령이 생전에 트럼프를 언급한적은 없다고 밝힌 바있다. 사진출처 로널드레이건대통령도서관
구가인 국제부 차장
구가인 국제부 차장
도널드 트럼프 45대 미국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40대·1981∼89년)을 닮았다는 주장은 대선주자 시절이던 2016년부터 지속된 논쟁거리였다. 할리우드 배우(레이건)와 리얼리티쇼 진행자(트럼프)라는 배경부터,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 이력, 최고령 당선(레이건 69세, 트럼프 70세 당선), 미 대통령으로서는 드문 이혼 경력까지…. 트럼프 대통령과 레이건 전 대통령의 평행이론은 호사가들 사이에서 유행했다.

하지만 대중이 인식하는 둘의 분위기는 상반된다. 중저음에 슈트 차림의 레이건 전 대통령이 유머를 갖춘 신사의 이미지를 줄곧 노출시켰다면, 빨간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쓴 트럼프 대통령은 거침없는 막말과 조롱으로 유명하다. 레이건 전 대통령의 딸인 작가 패티 데이비스는 여러 차례 매체 인터뷰와 기고로 자신의 아버지가 결코 트럼프를 지지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두 사람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데 탁월했다는 것은 다수가 인정한다. 미 정치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주자로 확정되기 전인 2016년 4월 당시, 지난번 대선의 공화당 대선주자였던 밋 롬니 전 매사추세츠 주지사의 수석고문 론 코프먼은 트럼프의 승리를 점치며 “레이건이 서부의 포퓰리스트라면, 트럼프는 동부의 포퓰리스트”라고 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레이건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자신에게 씌우려고 해왔다. 미국 현대사에서 보수의 아이콘인 레이건 전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재임 이후에도 출신 당의 정권 재창출을 이뤄낸 유일한 대통령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MAGA’ 슬로건 역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0년 대선 캠페인에 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하자(Let‘s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따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도 레이건을 언급한다. 지난해 ‘화염과 분노’가 나왔을 당시 그는 “이제 ‘가짜 책’도 견뎌야 한다”면서 “레이건도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잘 처리했다. 나도 그럴 것”이라고 썼다. 그는 국경장벽이나 낙태 문제 등에서도 레이건 전 대통령의 정책이나 이념이 자신의 것과 유사하다고 강조한다. 지난달에는 ‘가짜 레이건 발언’을 리트윗하며 ‘귀엽다(cute)’고 언급해 논란이 일었다. 해당 트윗은 1987년 당시 41세인 트럼프가 레이건 당시 대통령과 악수하는 사진 위에 “그 젊은이를 만났을 때 나는 대통령과 악수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등이 실려 마치 레이건의 말처럼 오해받을 내용이 담겨 있었다. CNN 등은 “레이건은 생전에 트럼프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다”고 전했고, 해당 트윗은 현재 삭제됐다.

무엇보다 ‘레이건 따라하기’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복지비를 줄이고 우주 첨단무기 개발 같은 ‘스타워즈’ 프로젝트에 열을 올리며 강한 미국을 주창하는 것도 한 예다. 특히 경제 및 무역정책은 레이건 행정부의 영향을 받았다. 레이건 정부는 미 역사상 최초로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지만 동시에 강력한 자국 보호주의를 내세웠다. 많은 이들이 현재의 미중 무역전쟁에서 레이건 시절 미국의 일본 때리기를 떠올리는 이유다. 협상단을 이끄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1985년 일본을 무릎 꿇린 플라자합의의 주역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두 사람의 또 다른 닮은 점이 발견(?)됐다. 지난달 31일 시사지 애틀랜틱은 레이건 전 대통령이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재직하던 1971년 당시 리처드 닉슨 대통령과의 전화 대화 녹음을 공개했는데, 레이건 전 대통령이 아프리카인을 ‘원숭이’에 비유하는 인종차별적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레이건의 유산’은 종종 정치적 목적을 위해 장밋빛으로 만들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해석을 내심 반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막말로 인종주의 논란을 겪을지언정 자신이 흠모하는 “레이건도 그랬다”는 트윗 한 줄 거리가 더 생기는 셈이니 말이다.

구가인 국제부 차장 comedy9@donga.com
#백악관#로널드 레이건#도널드 트럼프#레이건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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