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살 아빠와 여섯 살 딸이 192일간 세계 여행을 떠났다. 세계 일주를 하는 이가 많은 지금, 이 여행이 눈길을 끄는 건 아빠가 1년간 육아휴직을 하고 ‘독박 육아 및 여행’을 행동에 옮겼다는 점이다. 아내는 한국에 남아 회사를 다녔다. ‘육아휴직 하고 딸과 세계 여행 갑니다’를 최근 출간한 이재용 씨 이야기다.
대부분의 맞벌이 부부가 그렇듯 이 씨 역시 딸 서윤이의 얼굴을 보는 건 많아야 하루 2∼3시간이었다. 생후 100일부터 어린이집에 맡겨졌던 서윤이는 발레, 수영, 미술 학원에 다니느라 바빴다. 어느 날 이 씨는 아이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는 가장 큰 행복을 놓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고민 끝에 육아휴직과 여행을 선택했다. 물론 6개월이 넘는 여행은 쉽지 않았다. 서윤이가 복통에 시달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응급실로 뛰어갔을 때, 친구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뚝뚝 흘릴 때면 당장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하지만 서윤이가 원하는 것을 분명히 표현하며 한 뼘씩 자라는 모습을 보는 건 힘겨움을 훌쩍 넘어선 기쁨이었다. 이 씨의 선택은 이제 갓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남성 육아휴직이 개인과 가정에 미치는 신선한 파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갈수록 다양해지는 여행 방식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감지할 수 있다. 세 살 된 아들과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주겠지!’(2007년) 등을 출간한 오소희 씨는 아이를 키우느라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던 엄마들에게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배낭여행을 하며 자유롭게 세상을 누빈 세대였지만 엄마가 된 후 꼼짝달싹하지 못하던 이들에게 오 씨는 새로운 길을 안내해 준 셈이었다. 이로부터 10여 년이 지난 뒤에는 아빠가 회사를 그만두지 않고도 딸과 긴 여행을 할 수 있는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환갑잔치를 여는 대신 어머니와 아들이 세계 일주를 떠나고, 미니 버스를 마련해 러시아 핀란드를 거쳐 포르투갈까지 육로로 여행한 가족도 있다. 은퇴한 아버지와 군대를 제대한 아들이 함께 길을 나서기도 했다. 집을 판 비용으로 네 살 아들을 데리고 여행한 용감한(?) 부부도 있다.
사회가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인생의 타임 테이블에 억지로 맞추지 않겠다는 이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자신에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찬찬히 돌아보고 이를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점점 활발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시선보다는 나의 행복에 집중하고 각자 원하는 것에 맞춰 계획을 짜다 보니 여행의 방법이 다채로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결과다.
그런데 왜 여행일까. 길 위에서는 오로지 한 명의 자연인으로 존재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학력, 사회적 지위, 나이는 의미가 없다. 사회가 입혀 놓은 옷은 사라지기에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고 미처 몰랐던 모습도 발견하게 된다. 물론 그 길이 꼭 해외일 필요는 없다. 기간이 길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혼자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든 원하는 방식으로 움직이고 보고 느끼면 된다. 그렇게 성장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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