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시간 여행에 관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자화자찬하며 들떴었다. 몇 년간 그러다 보니 얼추 장편 하나를 쓸 만한 분량이 모였고, 손가락을 두두둑 꺾으며 본격적으로 쓰려 할 때, 하필 딱 그때 이 영화 ‘어바웃 타임’을 만났다.
영국 남서부 끄트머리의 해안가에 사는 팀 레이크는 21세가 되던 날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비밀을 듣는다. 집안 남자들에게만 유전되는 시간 여행 능력. 미래로는 못 가지만 과거로는 이동할 수 있다는, 벽장 속에서 주먹을 꽉 쥐고 두 눈만 질끈 감으면 원하는 곳으로 간다는 믿지 못할 얘기가 사실임을 확인한 팀은 그 능력으로 쉽게 돈을 벌고자 한다. 아버지는 찬찬히 타이른다. 할아버지는 부자였지만 친구도 없는 불행한 사람이었고, 삼촌도 결국 인생을 낭비하고 말았다고. 그러니 심사숙고해서 쓰라고 당부한다. 팀은 아버지의 충고대로 돈과 출세를 위해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또한 과거로 돌아가 상황을 수정하면 그 여파로 현재가 변하는 걸 겪은 후 더 신중해진다. 첫눈에 반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고,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가 된 팀에게 아버지는 유언으로 자신이 터득한 행복의 비결을 알려준다. 평범한 하루를 살 것. 그리고 그 하루를 다시 살아볼 것. 긴장과 걱정 때문에 첫째 날에는 보지 못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어제를 반복해서 살아보는 팀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다시 겪으면서도 이번에는 매 순간을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의 미소는 그가 만나는 모두를 미소 짓게 만든다. 시간 여행 능력의 수혜자로서 팀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행복한 삶에는 시간 여행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다. 과거를 바꾸기보다는 지금 주어진 상황에 나를 맡기며 감사한 마음으로 삶을 즐기는 것이 행복임을 깨달은 팀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마치 시간 여행을 온 것처럼 매 순간을 아끼고 만끽할 뿐이다.
예전에 써놨던 시간 여행 메모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그 시나리오는 포기했으니까. 할머니가 되어도 이 영화에서 다룬 주제보다 더 훌륭한 생각은 내 머리에서 안 나올 거란 걸 안다. 그래도 아쉽지 않다. 어바웃 타임을 본 것은 내 인생의 행운이었기에. 지치고 힘들 때면 생각해본다. 만약 내가 오늘을 다시 산다면? 코앞에 닥친 일에 함몰되어 지금 소중한 것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내게 주어진 숙제 때문에 허덕여도 오늘은 두 번째로 살아보는 오늘이다. 반복이니까 긴장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러니 오늘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즐길 차례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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