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에게 ‘인구론’은 “인문계 학생 90%는 놀고 있다”는 말이란다. 취직이 안 돼서다. 그 ‘인구’의 상당수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이다. 노량진 등 ‘공시촌’에서 몇 년이고 매달린다. 100 대 1을 넘나드는 경쟁률을 뚫기 위해 연애, 결혼, 출산, 취미, 인간관계까지 모두 포기하면서까지. 이들은 N포 세대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통계는 지난해 취준생 105만 명의 40%가량인 41만 명이 공시생임을 보여준다. 민간 취업포털 조사에선 “공시를 준비하겠다”는 비율이 60%에 달한다. 한국에서 9급 공무원 되기가 하버드대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외신의 조롱(미국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게 정상일까. 개인적으론 세계적인 투자자 짐 로저스의 말에 동의한다. 한반도에 관심이 많은 그는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곳은 없다”며 “인구는 줄어들고 가계 빚은 늘어나는데 모두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고 있으면 그 나라는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다.
한마디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공시족을 탓할 순 없다. 경기가 나빠 번듯한 일자리가 줄어드는 마당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경기가 어려울수록 정년 보장, 노후 연금, 여유로운 근무환경 등 공무원에 대한 유혹은 강렬하다. 게다가 우리는 젊어서 한번 공무원이 되면 현직 때는 물론 퇴직한 뒤에도 자기들끼리 알뜰살뜰 챙겨주는 ‘공무원 천국’인 게 사실이다 보니 뭐라 할 말도 없다.
인공지능(AI)이 핵심이고, 매일 새로운 직업이 탄생하는 시대에 이런 현상은 정말 비극의 한 단면이다. 한국직업사전에 수록된 우리나라 직업은 1만 개를 넘는데, 그중 하나인 공무원이 되겠다는 청년이 60%라는 것은 지나친 쏠림이다.
앞으로 경기가 좋아져도 쉽지 않을듯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 청소년들이 갖고 있는 잘못된 ‘진로 신화(career mythology)’도 그중 하나다. 진로 신화는 생활하면서 은연중에 얻어진 진로와 관련된 근거 없는 믿음을 말한다.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받았던 기초적인 적성검사를 사실인 양 신뢰(검사 신화)하거나, 부모나 교사 등 남에게 과도한 영향을 받는다는 점(의사결정 신화) 등이다. 특히 우리 청년들은 공직을 우선하는 사농공상(士農工商)문화의 영향(최고성 신화)을 받으며, 직업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분위기(안정성 신화)에서 자랐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 청년과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갑(甲)이면서도 안정적인 직업’으로의 도전을 은연중에 요구받아 이런 생각이 급격한 공무원 쏠림현상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진로 신화에서 벗어나려면 가정과 학교에서 미래 직업세계와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탐구 등 실질적인 진로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1만 개가 넘는 직업의 10분의 1만이라도 학생들이 생각해 볼 기회가 있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상급학교 진학요령만 가르치는 진학교육이 진로교육으로 포장되어 있는 한 공시 열풍은 영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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