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일부 도시는 중국인 관광객 늘어, 오사카 상인 “매출 타격 없어”
韓 여행객 의존하던 규슈는 비명… 아베 정권, 목표 달성에도 ‘빨간불’
7.6% 감소와 5.6% 증가.
일본정부관광국(JNTO)이 21일 발표한 7월 관광 통계 중 이 두 건의 수치는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7월 일본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 수(56만1000명)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7.6% 줄었다. 한국 국민이 자발적으로 일본 여행을 자제한 게 7월부터였고, 인터넷에 일본 여행 사진조차 올리기 부담스러운 분위기를 감안해도 감소폭이 그리 큰 변동을 보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7월 일본을 찾은 전체 해외 여행객(299만 명)은 전년 같은 기간 대비 5.6% 증가했다. 한국 여행객이 줄었지만 전체 방문객 수는 늘었다. 중국인 방문객이 지난해 7월보다 19.5% 늘어 폭발적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일본을 방문한 여행객을 국가별로 분류하면 중국이 1위(26.9%), 한국이 2위(24.2%)였다. 통계만 보면 한국인 여행객이 줄어도 늘어난 중국인 여행객으로 인해 일본 관광산업은 순항할 것 같다. 일본 정치인들도 여기에 무게를 두고 있다. 과연 정말 그럴까. 한국 여행객들이 비교적 선호하는 오사카(大阪)와 규슈(九州)엔 ‘한편으로는 맞고, 다른 편으로는 틀린’ 기류가 흘렀다.
○ 오사카 상인들 “한국인 줄었지만…”
22일 오후에 찾은 오사카 대표 쇼핑지 난바(難波). 아케이드로 연결된 쇼핑가는 사람들에게 떠밀려 다녀야 할 정도로 북적였다. 한국인 여행객들이 식품회사 글리코의 마라토너 간판이 있는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 위해 필수적으로 들른다는 에비스(戎) 다리에서는 수많은 관광객이 마라토너를 흉내 내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1시간 동안 가만히 지켜봤다. 한국인 여행객은 겨우 3팀. 반면 중국 여행객은 100배 이상 많았다. 평상시 한국어 아니면 중국어가 들린다는 에비스 다리였지만 이날은 중국어가 압도적이었다. 빨간 재킷에 살구색 모자를 쓴 60대 관광안내원은 “확실히 한국인 관광객이 줄었다. 피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에비스 다리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면세점 ‘도톤 플라자’의 풍경은 이런 말을 실감하게 했다. 대형 관광버스에는 중국인 단체 승객들이 오르고 있었다. 그 앞에는 20여 명의 또 다른 중국인이 쇼핑을 끝내고 버스를 기다렸다. 일본인 직원은 “몇 달 전만 해도 한국인 단체 관광객 수십 개 팀이 매일 왔는데, 요즘은 기억에 없다”고 말했다. ‘그래서 매출이 줄었느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중국인들이 워낙 많이 와 매출 타격은 없다”고 했다.
일본백화점협회가 21일 발표한 7월 전국 백화점의 면세점 매출액은 281억 엔(약 3230억 원)으로 전년 동월에 비해 3.4% 늘어났다. 한국인으로 한정하면 10% 줄었다지만 면세점으로서는 아쉬울 게 없는 셈이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한국인이 많이 찾는다는 규카쓰(쇠고기를 돈가스처럼 튀겨 만든 음식) 전문점도 찾았다. 오후 7시 무렵 난바 지하철역 출구 바로 옆에 위치한 식당 앞 지하 계단에서 2팀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당을 가득 채운 손님의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일본인이었다. 하지만 점원은 “여름방학에 저녁식사 시간임을 감안하면 대기 줄이 계단을 지나 도로까지 이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세 팀 대기에 그친다”며 “한국 손님이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이라고 했다.
대도시인 오사카 내 대부분의 상점은 한국인 감소로 인해 타격을 받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화장품과 의약품을 파는 한 가게 주인은 “한국 측이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것 같다. 경제 보복은 일본이 아니라 (일본 제품을 보이콧하는) 한국이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 직격탄 맞은 규슈의 깊은 우려
23일 찾은 규슈의 대표적인 온천지역인 오이타(大分)현 유후인(湯布院). 오사카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시내에서 5분 정도 차를 타고 언덕길을 오르니 고즈넉한 정원으로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은 한 료칸(旅館·일본식 전통 숙박시설)이 나왔다.
‘한국인 투숙객이 얼마나 오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A 지배인은 예약 장부를 보여줬다. “보세요. 8월 예약자 이름이 모두 일본인이죠. 원래 한국인으로 차 있었는데 대부분 취소했어요. 8월은 휴가 기간이라 일본인으로 간신히 막았는데 9, 10월은 텅 비어 있습니다.”
이 료칸은 2명부터 6명까지 사용할 수 있는 방 10개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인 여행객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며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이 찾는 곳이었다. 한 달 평균 600명 정도의 한국인 관광객이 찾았는데 8월부터 예약 취소가 줄을 잇더니 9, 10월 한국인 예약자는 ‘0명’이란다. A 지배인은 “매우 힘들다. 하루빨리 한일 관계가 좋아져 한국 예약이 늘길 간절히 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인 여행객이 크게 줄면서 유후인의 다른 숙박업체, 상점, 택시, 버스회사 등이 모두 힘들어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5월 규슈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37만 명 중 한국인은 49.5%인 18만3000명으로 중국인 관광객(8만2000명)의 두 배 이상이었다. 한국인 관광객은 이 지역의 경제를 떠받치는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유후인 시내의 한 기념품 가게 주인은 기자를 보더니 대뜸 “오랜만에 한국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는 “한국어와 한글을 배워 한국 손님이 오면 응대했는데, 요즘 언제 한국말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유후인 역 앞 인포메이션센터에서 관광 안내를 도와주던 직원도 “금요일이면 한국인들로 북적거려야 하는데 거리가 너무 한산하다”고 말했다.
유후인과 인접한 오이타공항에는 한국 티웨이항공이 취항했었다. 유일한 국제선이었다. 일주일에 총 10편이 취항했고 금요일에는 2편이 운항됐다. 하지만 19일부터 티웨이항공은 더 이상 취항하지 않는다. 유후인에서 승용차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온천마을 벳푸(別府)에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인으로 넘쳐났던 벳푸의 ‘바다 지옥 순례(海地獄巡禮)’ 관광지에도 한국인이 급감했다.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와 증기를 둘러보는 이곳에서 1시간을 머물렀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단 1명도 목격하지 못했다.
벳푸지옥조합사무소 관계자는 “지난해 90만 명이 찾았고 올해 목표는 100만 명이다. 상반기는 상황이 좋았는데 요즘 한국인 관광객이 크게 줄어 목표 달성이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 지방에서부터 커지는 불만의 목소리
지난해 한국인 관광객이 일본에서 쓴 돈은 5881억 엔(약 6조7000억 원)으로 전체 외국인 관광객이 지출한 4조5189억 엔의 13%에 달한다. 중국인 관광객(1조5450억 엔)에 이어 2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인의 일본 여행 취소가 내년까지 이어져 최근 20년 가운데 최소 수준(1998년 9억7000만 달러)으로 감소하면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0.1%포인트가량 내려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인 관광객이 계속 줄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부담을 안 느낄 수 없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재집권한 후 자신이 직접 의장을 맡은 ‘관광입국(立國) 추진 각료회의’를 신설해 강력한 관광산업 정책을 폈다. 도쿄 올림픽이 열리는 2020년에 외국인 관광객 4000만 명이 일본을 찾아 8조 엔을 쓰고 가게 만들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한국인 여행객 감소는 이런 목표 달성에 빨간불을 켠 것이기도 하다.
한국인의 빈자리를 중국인이 채울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인 여행객들이 집중되는 규슈 등 간사이(關西) 일부 지역과 홋카이도(北海道) 지역에선 아베 정권에 대한 불만이 점점 커질 수 있다. A 지배인은 “아베 정권이 과거사 반성 없이 한국을 너무 몰아세운다. 나뿐 아니라 유후인 시민과 상인 대부분이 같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막부를 무너뜨리고 1868년 메이지유신을 통해 새 시대를 연 세력들은 교토나 오사카 등 대도시가 아니라 지방 변방이던 사쓰마번(현 가고시마현)과 조슈번(현 야마구치현) 출신 하급 무사였다. 일본에선 지방이 중요하다. 아베 정권이 한국인 관광객 감소 현상을 눈여겨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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