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 방송사가 서울 중구 명동 글로벌문화체험센터에 촬영을 왔다. 방송 주제는 매주 수요일마다 운영하는 케이팝 댄스아카데미였다. 최신 댄스를 익히려 땀 흘리는 외국인 학생들을 보고 케이팝이 얼마나 세계적인 현상이 됐는지 깨달았다. 필자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쿨, DJ DOC, 클론 등의 여름 히트곡에 빠져 길가에서 파는 최신 가요 믹스테이프를 몇 개 사서 영국에 돌아갔다. 그런데 다른 학생들에게 외국 음악을 듣는 괴짜로 알려질까 봐 드러내고 듣진 못하고 이어폰을 끼고 들었다.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용기를 조금만 냈으면 케이팝의 해외시장 진출이 몇 년 앞당겨졌을까?
나의 소심함에도 불구하고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류가 회오리처럼 시작됐다. 한국 영화와 드라마가 일본에서 관심을 받기 시작하며 케이팝이 OST를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다. 보아와 동방신기를 시작으로 공연이 매진됐고, 열정적인 팬미팅이 이어졌다. 소녀시대 등 많은 아이돌 그룹들이 그 길을 따라갔다. 한국에 찾아오는 일본 관광객과 어학연수생도 급증했다. 이 성공 사례를 따라가기 위해 다른 가수들도 일본을 넘어 중국, 동남아 시장에 진출했고 마침 비슷한 시기에 이주여성들이 한국을 많이 찾기 시작하며 본국과 한국 사이의 문화전달자 역할을 해줬다. 그전에도 H.O.T. 등 한국 가수들은 해외서 인기가 많았는데(사실 H.O.T.에 빠져서 한국으로 유학 온 중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이렇게 다양한 가수들이 지속적인 성공을 거둔 것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초기 한류를 거품으로 봤는데 2012년 그 생각이 싹 바뀌었다.
그 이유는 싸이의 ‘강남스타일’ 때문이었다. 어딜 가든 귓가에 맴도는 중독적인 리듬은 어느덧 유튜브에서 조회수 10억 회를 넘겨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랐다. 이듬해에 아들이 잠깐 영국에서 학교를 다녔을 때 학교회의 시간에 장기자랑으로 오리지널 강남스타일을 시켜서 췄더니 다른 학생들이 난리였다고 한다. 나도 2014년 요르단으로 출장 갈 일이 있었는데, 호텔 풀장에서 열린 결혼식 피로연 소음이 내 방까지 들렸다. 익숙한 리듬, 강남스타일이었다. 솔직히 그날 밤엔 싸이를 100번 넘게 저주했다.
올해는 방탄소년단(BTS)이 대단한 도약을 이뤘다. 해외 음악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세계 유명 토크쇼에도 초대받았다. 딸이 지금 영국에 있는데 주변에 BTS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봤다. 예상외로 많다고 한다. 한국문화가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인 것은 확실하지만 유행은 금방 변할 수 있다. 지금까지의 해외시장 공략 방식은 주로 단순한 상품 수출이었기 때문에 언제든 인기가 사라질 리스크가 있다. 지속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경험 있는 해외 제작사와 협업해 가수를 키워낼 수 있다면 어떨까?
실제로 이런 시도도 이뤄지고 있다. 필자는 이제 아저씨지만 10대 딸의 아빠로서 케이팝 소식을 많이 듣는다. 얼마 전부터 딸이 크게 기대하는 것이 있다. 옛날부터 좋아했던 아이돌 그룹의 여러 멤버들이 모여서 만든 새로운 그룹 슈퍼M에 관한 것이다. 비틀스 판권을 소유하고 있는 CMG와 SM의 이수만 씨가 협력해 이 그룹의 글로벌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바이럴마케팅(입소문)을 통해 해외에서 성과를 낸 케이팝이 이수만 프로듀서의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로 글로벌 진출을 한층 더 확대할 기회를 갖게 됐다.
특히 각각 원래 소속된 그룹에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슈퍼M 멤버들인 미남 7총사가 이번 콜라보로 더 큰 시너지 효과와 성과를 내지 않을까 싶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 친구가 “서울에서 콜드플레이나 퀸의 노래를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처럼 요즘 파리의 매장에서는 케이팝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고 말해 놀랐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뿌듯하다”고 했다. 이미 케이팝은 세계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이 인기를 동력 삼아 케이팝의 다양한 아티스트들이 세계 음악시장을 정복하면서 한국을 문화 강국으로 선도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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