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왜 불이 났어?” 어린 아들이 묻는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어보니 노을이다. 붉은 노을을 상상하지 않고 눈으로 보는 것은 오래간만의 일이다. 드디어 노을이 짙어지고 하늘이 깊어지는 시절이 왔구나 싶다. 색의 계절, 가을이 찾아오는 것이다.
가을이 온다는 말은 우리를 안심하게 한다. 농경사회의 유전자가 남아서일까. 이제 추수가 시작되니까 덜 배고플 거라고, 우리의 조상이 속삭이는 것일까. 아니, 현대사회의 지친 유전자는 가을을 다르게 듣는다. ‘갈 것은 가고 올 것은 오는구나.’ 여름과 가을 사이의 시간은 이 사실을 말해준다. 계절의 말을 듣지 않고서는 매번 잊게 된다. 오늘의 고통은 영원할 것 같고 내일의 희망은 내 것이 아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살다’와 ‘견디다’가 같은 말처럼 느껴진다.
견디는 것조차 너무 힘들 때 읽고 싶은 시가 있다. 세상이 탈곡기가 되어 내 영혼과 에너지를 탈탈 털어갈 때 읽게 되는 시가 있다. 그럴 때 나는 김사인의 시를 읽는다. 그의 시는 마치 시 속에 등장하는 낙엽과도 같다. 외로움과 무력함에 아플 때 슬며시 나타나 옆에 있어 준다. 그럴 때 참 고맙다.
우리에게 저 낙엽 같은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저 낙엽 같은 사람일까. 삶이 견디는 것이라면 우리는 낙엽과 함께할, 혹은 낙엽이 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오늘만큼은 내 고마운 낙엽들을 찾아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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