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애적 성격장애[김창기의 음악상담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8월 31일 03시 00분


<85> 시카고의 ‘You're The Inspiration’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9월 2일은 정신건강의학의 큰 스승이신 존 볼비의 기일입니다. 1990년에 돌아가셨죠. 볼비는 애착이론을 창시한 의사입니다. 저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 일과 삶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제공해주신 분이기에 존경합니다. 볼비 이전까지의 정신건강의학은 인간 정신적 동기와 병리를 성욕, 무의식, 초자아 같은 모호한 개념들로 이해하려고 애썼지만 만족스러운 설명을 할 수 없었죠. 볼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정서적 행동적 문제를 보이는 것을 보며 인간이 성장할 때 안정적인 지지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습니다. ‘건강하고 성숙한 부모가 건강하고 안정적인 아이들을 키워낸다’는 원칙을 학문적인 이론으로 정립했습니다. 오늘날 정신건강의학의 기본이 되는 ‘애착이론’의 시작이었죠.

볼비는 좋은 부모의 조건을 찾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결국 따뜻한 부모, 일관적인 부모, 아이가 보내는 신호를 잘 파악하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부모, 관계 개선을 잘하는 부모가 좋은 부모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사랑이 많고 화를 조절하며 상대의 상태를 잘 파악하고 도와주려는 성숙한 어른인 것이죠. 다 아는 사실을 행동 통계를 통해 어렵게 재확인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사랑해주고 이해해주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부모를 보며 사랑과 신뢰를 얻게 되고, 삶의 기쁨을 알게 되고, 삶과 타인, 세상에 대해 긍정적인 예상을 하게 됩니다.

무관심하거나, 반대로 비판적이고 성취를 강요하는 불안정한 양육을 받으면 아이들은 자기애적 방어기제를 사용합니다. 자신이 쓸모없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지 않다고 믿으려는 것이죠. 자신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가치를 과장하고 편 가르기를 하고 상대방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흑백논리가 가장 효과적입니다. 그런 유아적인 방어법을 어른이 돼서도 사용하는 사람이 자기애적 성격장애자인 것이죠. 드러내놓고 잘난 척을 하지 않아도 과도한 윤리적 우월감이나 권위에 대한 반감도 자기애적 성향을 암시해 줍니다.

자신을 건강하게 사랑하고 보호하려면 안정적인 애착이 필요합니다. 만일 그것이 부족하다면 다시 신뢰하고 존경하고 의지하고 도움과 가르침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누군가와 연결돼야 합니다. 또한 나 자신도 어리고 부족한 누군가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야 하죠.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한 짐을 내려놓고 자신과 가족을 위한 진정한 삶의 짐을 져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긍정적인 영감을 받고 그 마음을 전달해야 하는 것이죠. “당신은 나의 삶의 의미이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은 정말 하기 힘들죠. 아부 같고 유치하고 오글거리니까요. 오늘 소개하는 시카고의 ‘유 아 더 인스피레이션(You‘re the inspiration·당신은 나의 영감)’은 그런 마음을 용감하게 전달해주는 노래입니다. 시카고의 보컬 피터 서테라가 작곡한 노래죠. 핏대를 올리며 비판하기보다는 볼비 선생님처럼 따뜻하고 일관적이고 사려 깊게 반응한다면 진심으로 존경받게 될 것이고, 이 세상은 좀 더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시카고#you\'re the inspir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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