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고위 관계자 A는 한숨을 내쉬었다. “국방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에 반대한 것 아니냐”는 필자의 질문에 답하던 중이었다. 이 한숨은 청와대가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지난달 22일 이후 국방부에 확산되고 있는 무력감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국방부 관계자 상당수는 실제로 지소미아를 파기하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청와대가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하지 못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지렛대 차원에서 꺼내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국방부가 청와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을 더욱 예측하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지소미아 주무 부처로서 연장 의견을 청와대에 일관되게 피력해왔기 때문이다. 청와대가 일본과 주고받는 대북군사정보의 효용성을 가장 잘 아는 국방부 의견을 비중 있게 반영할 것으로 믿었던 것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 B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상임위원회를 열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22일에도 “연장으로 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파기로 결론 나자 국방부에는 당황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국방부는 그간 지소미아의 안보적 실익에 대해 내뱉은 말을 스스로 거둬들여야 하는 난감한 처지가 됐다.
국방부는 2016년 11월 지소미아 체결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협정 체결 필요성 및 실익’이라는 항목을 따로 만들어 일본이 제공할 대북정보의 효용성을 알렸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일본의 정보능력까지 활용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안보 이익도 제고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과 영상정보 등을 직접 공유하게 된다면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궤적과 핵능력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 역시 파기 결정 하루 전인 지난달 21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지소미아의) 전략적 가치가 충분히 있다”며 북한 핵실험 당시 일본 정보의 도움을 받았던 사례를 들었다. 연장을 예상했기에 가능한 발언이었다.
그랬던 정 장관부터 자기 부정의 딜레마에 빠졌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나가 “지소미아는 효용 가치가 높지 않다고 볼 수 있다”며 닷새 전에 한 말을 스스로 뒤집어야 했다.
국방부 일각에선 청와대를 탓하는 목소리가 높다. 국방부 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후폭풍을 국방부가 감당하며 곤욕을 치르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이 같은 불만은 지소미아 사태로만 야기된 건 아니다. 6월 ‘삼척항 해상 노크 귀순’ 때도 반발이 있었다. 군이 사건 발표 당시 은폐 논란의 핵심이 된 ‘삼척항 인근’이라는 표현을 쓰도록 승인한 건 청와대 국가안보실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에 따른 비난은 군의 몫이었다. 군 관계자들은 북한이 최근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할 때 군이 ‘발사체’라는 두루뭉술한 개념으로 발표하는 배경에도 안보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역 장교 C는 “청와대가 군사안보적 판단에 기반한 군의 의견을 너무 배제한다. 군에 결정권이 없다”고 했다.
특히 군 내부에선 지소미아 파기 결정 이후 “한국에 실망했다”며 고강도로 한국을 압박 중인 미국이 군사실무적으로도 한국을 외면할 것이란 우려가 높다. 미국이 한국 정부를 불신한 끝에 미군 정찰위성 등으로 수집한 대북 군사정보의 공유량을 대폭 줄일 수 있고, 이는 안보 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는 우려다.
청와대는 지소미아 파기 이유로 국익을 내세웠다. 파기 결정 11일이 지난 현재 한국이 얻은 국익은 무엇일까. 미 정부의 ‘실망 릴레이’로 한미동맹의 위기는 고조됐다. 그 사이 미일은 지난달 26일부터 유사시 병력과 물자를 전개하는 전시 증원연습을 하며 밀착하고 있다. 지소미아 파기와 한국의 고립으로 핵실험 등 북한 내 이상 동향을 제때 파악하기 어려울 것이란 안보 불안감은 확산되고 있다. 무엇보다 국방부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면서 안보 최전선에 있는 군의 사기가 저하된 건 큰 문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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