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 시리즈는 제목을 읽는 데서부터 세대 차가 드러난다. 101은 영어로 읽어야 한다. 그렇다고 ‘원 헌드러드 원’이나 ‘원 제로 원’으로 읽어서는 젊은이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미국 사람처럼 ‘원 오우 원’, 혹은 대강 연음해 ‘워너원’으로 읽어야 한다. 물론 꼰대 취급 받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않는다면 백일이나 일공일로 읽어도 상관없다.
▷101이란 숫자는 101명의 아이돌 연습생이 나와서 경쟁을 벌인다고 해서 붙었다. 최종적으로 남은 11명이 계약된 기간 동안 프로젝트 그룹을 만들어 활동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것으로도 큰 성공이다. 여자 연습생이 출연한 시즌 1에서는 ‘아이오아이(I.O.I)’라는 그룹이 만들어져 김세정 전소미 같은 스타가 나왔고, 남자 연습생이 출연한 시즌 2에서는 ‘워너원(Wanna One)’이라는 그룹이 만들어져 강다니엘 박지훈 같은 스타가 나왔다.
▷가장 최근인 올 7월 끝난 것이 ‘프로듀스X101’인데 투표 조작 의혹에 휘말렸다. 7월 19일 마지막 생방송 때 시청자 유료 문자투표에서 예상을 뒤집는 의외의 결과가 나오고 순위 득표수에서 이해하기 힘든 규칙성이 발견된 것이다. 방송 내내 화제를 모았던 두 후보가 탈락한 데다 1위와 2위, 3위와 4위, 6위와 7위, 10위와 11위의 표 차가 모두 정확히 2만9978표였다. 주최 측은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원인을 찾지 못하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필자가 중학생일 때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인기였다. ‘박원웅과 함께’를 열심히 들었는데 친구가 어느 곡을 순위에 올려야 한다고 해서 함께 수백 장의 엽서를 보냈던 적이 있다. 컴퓨터화된 세계에서는 타인의 아이디로도 투표할 수 있다. 시즌 1에서 이미 아이디 중복 투표가 드러나 논란이 됐다. 시즌 2에서는 중국에서 아이디를 사고파는 행위가 적발되기도 했다. 아예 해킹해 아이디를 가로채거나 생성할 수 있다면 순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찰은 2일 투표 조작 의혹 수사를 시리즈 전체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정말 조작이 있었다면 누가 어떻게 조작할 수 있었는지, 이 프로그램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궁금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가 그 작동 과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시스템 앞에서 느끼는 불안은 빅브러더로 표상되는 숨은 조작자에 대한 불안이다. 삶의 조작은 ‘트루먼 쇼’, 기억의 조작은 ‘인셉션’ 같은 영화에서나 있는 일인지 몰라도 투표의 조작 정도는 이미 현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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