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텐센트가 투자한 ‘위닥터(WeDoctor)’는 화상 채팅을 활용한 온라인 원격 진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1억 명이 넘는 이용자를 보유한 위닥터는 2010년 설립 이후 최근까지 10억2500만 달러(약 1조2409억 원)를 투자받았다. 중국의 지방 소도시 사람들은 위닥터 덕분에 대도시의 의료진에게도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 55억 달러 수준의 가치를 가진 것으로 평가받는 위닥터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헬스케어 유니콘 중 하나다.
한국은 헬스케어 분야에서 앞선 인프라를 갖고 있는 곳으로 평가받는다. 우수한 인력, 방대한 데이터, 수준 높은 정보통신기술(ICT)을 모두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다.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낼 조건은 두루 갖췄지만 원격 의료에 반대하는 의사들을 설득하지 못하고 20년째 제자리걸음이다. 규제 샌드박스 및 규제자유특구를 통해 제한적으로 원격 의료 시범 서비스를 시작한 한국에서 ‘위닥터’ 같은 헬스케어 유니콘은 아직 요원하다.
올해 말까지 신규 벤처펀드 조성액이 4조 원이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2017년 3개였던 유니콘 기업은 9개로 늘어나는 등 국내 벤처 생태계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규 벤처 투자와 신설 법인 수가 함께 늘면서 ‘제2의 벤처붐’이라는 이야기도 자주 들린다.
괄목할 만한 외형 성장에 비해 규제 개선 속도는 이에 걸맞지 않게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이 많다. 글로벌 기업가정신 모니터(GEM·Global Entrepreneurship Monitor)에 따르면 한국의 진입 규제 강도 순위는 2017년 49위에서 지난해 38위로 상승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이다. 원격 의료 외에 4차 산업혁명의 원유로 불리는 데이터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몇 년째 지지부진하다. 개인 식별이 어려운 가명정보 사용을 허용하는 법안이 마련됐지만 국회에서 1년 가까이 계류 중이다.
정부가 규제 혁신의 강도를 높이겠다며 도입한 규제 샌드박스도 부처 간 합의가 안 되거나 사회적 파장이 있는 규제는 대상에서 제외돼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규제 샌드박스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이 많다. 예를 들어 해당 사업을 하려면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어떤 장치를 꼭 달아야 한다는 식이다. 규제 샌드박스는 말 그대로 모래밭에서 마음껏 해보라는 것 아니었나. 이런 이유로 아예 샌드박스를 신청하지 않는 곳들도 많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 나갈 핵심 구성원으로 성장했다. 2014년부터 매년 10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생기고 있고, 2017년 기준으로 국내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사람은 76만 명이나 된다. 성장에 비례해 고용을 늘리는 스타트업 및 벤처기업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 경제를 견인할 주인공들이다.
최성진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표는 “국내 스타트업 정책은 주로 돈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짜여 있는데 혁신의 방향을 미리 파악해 정밀하게 지원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며 “정부가 민간에 해줄 수 있는 최상의 지원은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를 없애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 기업의 탄생을 방해하는 규제 타파를 위해 과감히 속도감을 높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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