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내 화살머리고지를 찾았다. 지난해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올해 4월부터 6·25전쟁 전사자 남북공동유해발굴 작업이 한창이었다.
DMZ 통문 앞에서 국군의 방탄모와 방탄조끼를 받아 입었다. 플라스틱 재질의 방탄모가 북한군 철갑모보다 훨씬 무거워 놀랐다. 땡볕과 혹한 속에 무거운 방탄모와 방탄조끼, 총과 탄약 등을 장착하고 전방을 지키는 군인들의 노고가 묵직하게 몸으로 전해졌다.
덩굴식물로 무성하게 덮여 있는 발굴 현장에 도착했을 때 6·25전쟁 당시 국군이 매우 불리한 지형 조건에서 전투를 치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지의 남쪽 면은 가파른 데 반해 북쪽 면은 높은 산과 연결된 완만한 경사지였다. 중공군은 미끄럼틀을 타듯 내려왔겠지만 한국군은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며 싸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전쟁 당시 이 고지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격전이 네 차례 펼쳐졌다. 그 과정에서 국군 약 250명, 미군과 프랑스군 100여 명, 중공군 3000여 명이 전사했다. 이곳에서 3km 남짓 떨어진 백마고지에서도 국군 3396명, 중공군 1만4000여 명이 전투 중 사망했다. 현재 상주인구가 4만5000명에 불과한 철원 평야를 두고 수많은 생명이 죽고 다친 셈이다.
산중턱을 깎아 만든 폭 12m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군사분계선(MDL)이 눈앞에 보이는 지점까지 다가갔다. 지난해 11월 도로 연결 작업 중 남북 군인이 악수를 하는 감격적인 사진이 찍혔던 그 장소였다.
한국은 가파르게 경사진 언덕배기에도 중장비를 동원해 불과 몇 달 만에 넓은 도로를 만들었다. 반면 북한은 지형 여건이 좋은데도 중장비를 거의 동원하지 못하고 삽과 곡괭이로 협소한 도로만 닦았다. 남북의 현격한 경제력 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7월 “화살머리고지의 유해 발굴을 마치면 남북 협의를 통해 DMZ 전역으로 유해 발굴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을 둘러보면서 대통령의 바람이 임기 중에는 이뤄지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남북공동유해발굴이란 말이 무색하게 악수 장면을 연출한 뒤 북한군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쪽 도로엔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을 뿐 발굴 작업의 징후는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북한이 유해 발굴 지역 확대에 응할 뚜렷한 동기도 없다. 1990년대 함경남도 장진호반에서 미군이 유해 발굴 작업을 했을 때 북한 사람들은 왜 미국이 엄청난 비용을 들여가며 뼈를 찾으려 애쓰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그럴 것이다.
발굴 작업의 이해 당사자이자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중국도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전사자 수를 고려할 때 화살머리고지에서 발견될 유해는 국군이나 유엔군보다 중공군의 것일 가능성이 10배 이상 많다. 하지만 중국은 전쟁이 끝나자 북한에 전사자 합장묘를 만든 뒤 유해 발굴에 노력을 기울인 적이 한 번도 없다.
유해 발굴 사업은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이산가족 상봉과 비슷하다. 우리는 인도주의 측면을 고려해 사업을 추진하지만 북한의 계산은 다르다. 남쪽에 연고를 둔 이산가족은 출신 성분이 나쁜 계층으로 분류돼 있다. 남쪽 가족과 만나게 해주고, 달러와 값진 물건을 받는 특혜를 굳이 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다만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에 응하는 것은 식량 지원 등과 같은 대가를 얻을 수 있어서였다.
결국 북한군이 참전하지도 않은 화살머리고지 전투의 전사자 유해 발굴 작업에 북한이 응한 것은 대가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해 발굴에 응했는데도 북한은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관광 재개와 같은 기대했던 대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지금 북한은 남쪽의 단독 유해 발굴을 묵인하는 것만으로도 남쪽에 큰 배려를 베푼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런 실상을 무시하고 문 대통령이 DMZ 전역으로 유해 발굴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일방적으로 말하면 북한은 매우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이렇게 묻고 싶을 수도 있다. “그럼 남쪽에선 뭘 줄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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