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가 무조건 옳다고 보지는 않아요. 하지만 사교육 여건이 좋은 서울도 아니고 맞벌이까지 하는데 우리 아이가 수시전형으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요?”
고교 1학년 자녀를 둔 경기 지역의 한 학부모 말이다. 조국 법무부 장관 딸의 대학 부정 입학 의혹을 둘러싼 ‘스펙 부풀리기’ 논란을 지켜보면서 느낀 심경이라고 했다. 한때 자녀가 공부로 성공할 수 있는 3대 요소가 유행처럼 떠돈 적이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우리 사회의 현실과 대비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런데 막상 주변을 보면 이렇게 모두 갖춘 사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대학 가는 세상은 반대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필자만 ‘아빠의 무관심’에 충실했던 탓일 수도 있다.
9일 임명된 조 장관은 그런 점에서 이 3박자가 맞아떨어진 사례로 보인다. 그는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딸의 ‘스펙 부풀리기’ 의혹에 대해 대부분 “몰랐다” “그때는 그랬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딸의 입시나 학업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는 듯이 보였다. 어느 누리꾼의 지적처럼 진짜 무관심인지, 무관심을 가장한 관심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건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국 교육에 대한 불신이 더욱 깊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문재인 대통령은 ‘교육 개혁’ 방침을 밝혔다. 한국 교육은 어떤 방향이든 다시 수술대에 오를 가능성이 커졌다.
불신의 뿌리는 입시제도다. 많은 학부모가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을 포함한 수시모집의 축소를, 더 나아가 폐지까지 요구하고 있다. 온라인에는 “금수저만을 위한 입시제도를 없애야 한다”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는 의견이 넘쳐나고 있다. 2일 입시정보업체 진학사 발표에 따르면 고3 수험생 10명 중 4명 이상(43.7%)이 수능을 가장 공정한 평가라고 답했다.
학종 경쟁에서 앞서가려면 이제 어지간한 경제력이나 정보력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른바 입시 컨설팅은 보통 회당 30만∼50만 원이 기본이다. 목표에 따라 지속적으로 맞춤형 컨설팅을 받으면 금액은 껑충 뛴다. 평범한 부모들의 경제력으로는 감당하기가 힘든 수준이다.
그런데도 주무 부처인 교육부는 정시 확대 여론에 대해서는 선을 긋고 있다. 대통령 발언 이후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정시와 수시 비율 조정으로 시스템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9일에도 교육부 관계자는 “2022학년도 대입 때 비율(정원의 30% 이상)보다 정시를 확대할 생각은 없다. 정시 증가가 공정성 확보 방안이 되는지도 의문”이라고 밝혔다.
수능이 처음 치러진 지 26년, 수시모집이 도입된 지 23년이 지났다. 수시 비율은 2020학년도에 77.3%까지 올랐다. 논문이나 외부 수상 경력 등을 배제하는 등 꾸준히 개선도 이뤄졌지만 아직 누구도 100% 공정하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면 많은 국민들이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정시 비중 확대를 이번 기회에 검토하는 게 필요해 보인다. ‘논의의 대상도 아니다’라고 서둘러 가능성을 닫아 버리는 건 여론을 뭉개는 것일 수도 있다. 진정한 교육 개혁의 첫걸음은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고정관념을 벗어나려는 노력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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