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은 콘텐츠제작사 ‘비디오편의점’ 대표PD스탠드업 코미디라는 장르가 있다. 코미디언이 홀로 무대에서 마이크를 잡고 관객을 웃기는 코미디다. 처음 접한 건 친구의 자기소개 문구였다. “인생 삼모작을 위해 틈나는 대로 넷플릭스를 보며 스탠드업 코미디를 연마 중이다.” 당시 넷플릭스가 한국에 진출하던 때였고, 눈 밝은 이들이 하나둘 빠져들던 시기였다. 그곳엔 한국 TV에선 볼 수 없던 이야기들이 있었다.
지금까지 한국 예능은 누군가를 놀림감으로 만들어 웃기는 데 익숙했다. 하지만 새로운 롤모델이 생겼다. 넷플릭스의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를 가득 메운 관객들의 환호 속에 등장하는 호주의 레즈비언 코미디언 헤나 개즈비는 선언한다. 여성이자 성 소수자인 자신은 그동안 자학하는 코미디로 경력을 이어왔으나, 이것이 여성 혐오적 구조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이상 하지 않을 거라고. 순간 내 주변에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우리도 한번 해 볼까?
그리하여 열게 된 스탠드업 코미디언 꿈나무 발기인 대회. SNS에 올리니 5명이 신청했다. 하지만 막상 당일이 되니 너무 두려워서 세상에서 제일 안 웃긴 사람이 된 기분에 휩싸였다. 일단 돌아가며 소개를 했다. 함께 웃긴 영상을 봤다. 대본 써오기 숙제를 내고 헤어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알고 보니 누가 오늘 직접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줄 알고 찾아온 거였다. 우리가 당황하며 “못 한다”고 식은땀을 흘리자 그가 갑자기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제가 글방을 오래 다녔는데요. 거기서 하는 일이라곤 각자 글을 쓰고 봐주는 게 다였어요. 글이든 코미디든 실력이 느는 방법은 직접 해보는 거밖에 없지 않을까요?” 결국 우리는 몸풀기 게임을 통해 순서를 정한 뒤 한 명씩 무대로 나와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보기로 했다. 한 친구가 할머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는 올해 90세인데 사소한 면에서 진짜 이기적이야. 예를 들어 맛있는 반찬이 나오잖아? 그럼 보통의 할머니들은 내 새끼 더 먹어 하면서 챙겨주잖아, 그런 거 절대 없어. 무조건 반으로 딱! 나눠서 자기 앞에 들고 가. 그러면서 뭐라는 줄 알아? 너희는 앞으로 먹을 날이 많대! 이상한 할머니지?” 그러면서 용돈 보내드린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월급날이 25일인데, 아침부터 전화가 와.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앞인데, 네가 용돈을 안 보내줘서 내가 국밥을 못 먹는다고. 할 수 없이 하루 전날 자동이체를 걸어놨는데 글쎄∼” 하며 이야기가 절정에 이른 순간 객석에서 누가 울기 시작했다.
“우리 할머니는 87세인데 10년 동안 집에만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친구는 한 번도 할머니가 혼자 ATM에 가는 상상을 한 적 없다가 갑자기 눈물이 났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무대 위 코미디언도 할머니를 떠올리며 울기 시작했다.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우리 안엔 이미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그것들은 웃기면서 슬펐고, 슬프면서 웃겨서 우리는 울다 웃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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