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대다수 “조국은 안 된다”
이전 장관 후보자 시비와 달리 진영 논리 깨뜨린 호응 얻어
강한 도덕성 확신 담은 공론… ‘닥치고 비호’ 패거리주의와 차별
공론 안 통할 때 언론은 뭘 하나
조국 법무장관 임명에서 숨 막히는 기분이 든 것은 공론(公論)이 시행되지 않았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왕이 주권을 갖고 있을 때조차도 공론은 천하의 원기(元氣)라고 여겼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권력은 법에 따라 단순히 행사하는 것을 넘어 최소한 부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공론정치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은 날것 그대로의 권력에 의해 강행한 것이다. 장관 검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문민정부 이후 이 정도로 공론과 충돌한 인사가 또 있었나. 문재인 대통령은 “개혁성이 강한 인사일수록 임명에 반대가 많다”며 화살을 국민에게 돌렸다. 수사권이 검찰에 있든 경찰로 가든 일반 국민으로서는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불과해 별 관심이 없다. 그런데 개혁에 반대하고 있다니, 숨 막히는 이유는 거기에도 있다.
인사에 대한 공론은 그 사람이 책임질 위법행위가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다. 위법행위가 있으면 감옥에 가거나 말거나 할 일이지 임명하거나 안 하거나 할 일이 아니다. 인사에 대한 공론은 장관을 할 만한 사람이냐를 전체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막스 베버가 ‘소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에서 결여해서는 안 되는 감각으로 꼽은 ‘눈대중(Augenmaß)’이란 말을 빌리자면 위법이냐 아니냐 일일이 자로 재듯 재는 것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런 식으로 국민 대다수가 함께 “그 사람은 안 돼”라고 하면 그것이 공론이다.
언론이 항상 공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사로운 의견이나 당론(黨論)을 공론으로 포장하는 경우도 있다. 아마 문 대통령이 지명한 장관급 후보자에 대한 많은 시비들 중에서는 공론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의 시비들과 조 후보자를 둘러싼 시비는 그 수준이 질적으로 달랐다. “조국 씨는 안 돼”라는 의견은 완고한 진영 논리를 깨뜨릴 만큼 공론적이었다.
공론은 여론과는 다르다. 여론은 단순히 다수이냐 아니냐를 따지지만 공론은 합리적 이유를 들어 그 주장을 정당화할 수 있어야 한다. 쇼비니즘(맹목적 민족주의)은 다수의 지지를 받더라도 합리적으로 그 주장을 정당화할 수 없기 때문에 공론이 되지 못한다. 반면 “조국 씨는 안 돼”라는 주장은 공정성을 향한 강한 도덕적 확신에 기초하고 있었다. 그래서 ‘닥치고 비호’를 외친 패거리주의의 부도덕성이 더욱 선명해 보였다.
조국 법무장관 임명 반대는 여론상으로도 우세했다. 리얼미터 같은 여론조사기관에서조차 50%대를 기록했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실제 체감할 수 있는 반대의 목소리는 그보다 훨씬 높았다. 샘플도 확정되지 않은 ‘전화 임의걸기’를 해서 500명을 채우는 리얼미터 식의 싸구려 조사 말고 외국에서처럼 응답자에게 돈을 주고 하는 제대로 된 조사를 해봤다면 최소한 10% 이상은 더 높았을 것이다.
법무장관은 장관 중에서도 특별한 장관이다. 프랑스에서는 법무장관을 ‘가르드 드 소(garde de sceau)’라고 해서 일반 장관(ministre)과는 달리 부른다. 영국에서도 법무장관은 로드 챈슬러(Lord Chancellor)라는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미국은 법무장관의 역할이 프랑스 영국 등과는 다소 다르지만 역시 일반 장관(Secretary)과는 달리 어토니 제너럴(Attorney General)이라 부른다.
‘가르드 드 소’는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도장을 보관하는 사람이다. ‘가르드 드 소’는 왕의 결정이 담긴 문서에 도장을 찍어 집행력을 부여한다. 그렇다고 기계적으로 도장을 찍는 것은 아니었다. 왕의 결정이 정치적 전통을 침해한다고 여기면, 즉 공론에 반한다고 여기면 도장 찍는 것을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군주제에서는 왕이 주권자이기 때문에 도장 찍기를 거부하는 그를 불러 도장을 찍으라고 명령할 수 있었다. 그 경우 그는 왕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대신 왕의 결정에 대한 책임을 면한다. 주권자가 왕 한 사람인 체제에서 공식적으로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 ‘가르드 드 소’였던 것이다.
다른 장관도 아닌 이 특별한 법무장관의 임명 과정에서 공론이 철저히 무시됐다. 공론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언론인데 벽에 대고 말하는 느낌이다.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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