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이 일어났다. 9일 오후 6시(현지 시간) 미국 해안경비대(USCG) 트위터에 “마지막 골든레이호 선원을 무사히 구출했다”는 소식이 올라온 것. 현대글로비스 완성차 운반선인 골든레이호가 미국 조지아주 브런즈윅항에서 12.6km 떨어진 바다에서 전도(顚倒)된 사고가 일어난 지 41시간 만이다. 승선자 24명 가운데 20명은 바로 구조됐으나 선박에 화재가 발생하면서 구조가 중단됐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화재가 겹쳐 선박 내부 온도가 50도까지 치솟았다. 남은 한국인 선원 4명은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전장 199.9m, 전폭 35.4m 크기 골든레이호는 마치 언덕이 쓰러진 듯 보였다. 화재를 진압한 해안경비대원들은 그 언덕에 올라 생존자를 찾아 나섰다. 선체를 ‘똑똑’ 두드리는 소리로 이들의 위치를 파악한 건 9일 낮. 구조는 서두르지 않되 치밀하게 이뤄졌다. 해안경비대원들은 먼저 7.6cm 구멍을 뚫어 빵과 물을 공급했고 내시경 카메라로 정확한 위치를 파악했다. 사다리를 내려보낼 선체를 뚫는 데는 드릴을 썼다. 용접은 빠르지만 불꽃이 튈지 몰라서다. 마지막으로 구조된 선원 A 씨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갇혀서 가만히 밤을 새웠지만 구조대는 (파이프 등을) 자르고 없던 길을 만들고 우리를 찾기 위해 밤을 새웠다”고 했다.
▷이번 골든레이호 구조 과정을 보며 ‘허드슨강의 기적’을 떠올렸다. 2009년 1월 뉴욕 허드슨강에 US에어웨이 비행기가 이륙 5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비상착륙했다. 승객이 전원 생존한 이 사고는 영화 ‘설리: 허드슨강의 기적’으로 만들어졌다. 영화에선 기장의 기민한 판단과 헌신적인 구조 노력 등 영웅적인 행보가 감동을 줬지만 그 후 발간된 사고조사보고서는 철저한 재난 대비 덕분에 인명 피해를 최소화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보고서는 사고 직후 각 기관에 비상경보가 전파되고 구조선이 움직이고 구급차가 집결하기까지 일사불란한 움직임을 초 단위로 기록했다.
▷골든레이호 구조작업을 지휘한 로이드 헤플린 중위는 “그들이 ‘똑똑’거리는 생존 신호를 냈을 때 밖에서 선체를 밤새워 두드렸던 건 결코 (생존자들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는 우리의 응답 메시지였다”며 “당신들은 혼자가 아님을 알려야 했다”고 말했다. 덕분에 ‘우리는 죽지 않는다’를 되뇌며 선체를 두드리던 생존자들은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었다. 기꺼이, 묵묵히 타인의 생명을 지키는 데 사력을 다하는 이들 덕분에 사회의 안전판이 단단한 것일 터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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