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이 살아있었다면 브라운관 고집했을까?[현장에서/김민]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9월 12일 03시 00분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백남준의 1988년 작품 ‘다다익선’.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김민 문화부 기자
김민 문화부 기자
1년 넘게 불이 꺼졌던 백남준(1932∼2006) 작품 ‘다다익선’(1988년)의 복원 방향이 결정됐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11일 “브라운관(CRT) 모니터를 최대한 복원해 원본성을 유지하고, 불가피한 경우 최신 기술을 부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기술이 뒷받침하는 선에서 최대한 브라운관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다다익선’은 TV 수상기 1003대로 만든 높이 18.5m의 비디오 타워. 노후에 따른 화재 위험 등의 문제로 지난해 2월 상영을 중단했다. 그 후 복원 방향을 두고 MMCA는 국내외 전문가 40여 명의 의견을 수렴했다. 그 결과 발광다이오드(LED) 기술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23명으로 브라운관 유지 의견(12명)보다 많았지만 MMCA는 신중한 접근을 택했다.

MMCA가 공공 미술관으로서 원형 보존에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은 존중한다. 세계적인 작품에 함부로 손대기 어려운 고충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가치가 외적인 형태에만 국한되는지는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개념 미술’의 창시자인 마르셀 뒤샹은 남성 소변기로 만든 대표작 ‘샘’ 원본을 잃어버린 뒤 벼룩시장에서 다른 소변기를 구해 사인을 했다. ‘샘’은 형태가 아닌 아이디어가 중요한 예술작품이었기 때문이다.

백남준의 엔지니어로 협업했던 이정성 아트마스타 대표도 같은 맥락을 지적했다. 이 대표는 “핵심은 백남준이 직접 편집한 영상과 소프트웨어”라며 “어느 순간 모니터가 곡면(브라운관)인지 평면(LED)인지에 논의가 집중돼 ‘다다익선’이 마치 브라운관을 위한 작품처럼 됐다”고 꼬집었다.

‘브라운관 유지’ 방향이 궁극적으로는 시한부라는 문제도 있다. 새로 브라운관을 교체한다고 해도 그 수명은 10∼15년에 불과하다. 최대한 물량을 확보한다고 해도 최후에는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는 방법이 불가피하다.

베른하르트 제렉스 전 독일 예술과매체기술센터(ZKM) 수석큐레이터는 “1988년의 TV가 보존되지 않았고 맞지 않는 기술에 고군분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주는 단기적 해결책이자 헛된 절차”라는 의견을 전달했다.

MMCA는 브라운관 모니터 복원의 사례로 미국 휘트니미술관에 있는 고인의 작품 ‘세기말 II’(1989년)를 들었다. 그러나 TV 203대로 구성한 ‘세기말 II’도 연구와 복원에 7년을 투자했다. ‘다다익선’은 5배 규모에 전시 기간도 훨씬 길다. 해외 사례를 참고해 성급히 결정하기보다는 예술의 가치와 현대 미술에서 ‘원본’의 의미와 ‘다다익선’의 미술사·미학적 가치를 한국 사회가 활발히 논의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좋겠다.
 
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백남준#다다익선#예술#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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