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자타가 공인하는 여걸(女傑) 두 명이 있다. ‘구글의 엄마’로 불리는 수전 워치츠키와 ‘페이스북의 누나’ 셰릴 샌드버그. 둘 다 명문 하버드대를 나온 유대인으로 정보기술(IT) 산업의 핵심에서 활약하며 돈과 명예를 다 거머쥐었다. 문과 출신인 이들은 어떻게 지금의 직업을 선택했을까. 어떤 우연이 작동했고,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었을까.
하버드에서 역사와 문화를 전공한 워치츠키는 고향인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MBA를 마치고 대기업 인텔에 들어갔다. 1998년 첫아이 출산을 앞두고 스탠퍼드대 인근에 새 집을 장만했으나 대출(모기지론) 이자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이를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차고를 임대했는데, 그때 차고를 빌려 창업을 준비한 청년들이 스탠퍼드대학원에 다니던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였다.
워치츠키는 이들과 대화하면서 인터넷 검색엔진의 미래를 봤고, 매달 1700달러를 일종의 투자 의미로 빌려주었다.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업인 구글은 불과 20년 전 그렇게 탄생했다. 회사가 세워지자 워치츠키는 아예 인텔을 그만두고 구글의 첫 여직원이 됐다. 구글의 엄마라는 애칭의 배경이다. 바이럴 마케팅을 시작으로 경력을 쌓아 나간 그녀는 2006년 광고 담당 부사장이 됐다. 이때 경쟁 관계인 작은 스타트업 유튜브에서 또 다른 미래를 보았다. 워치츠키는 구글의 유튜브 인수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2014년에는 직접 최고경영자(CEO)를 맡아 ‘갓튜브’란 말을 들을 정도로 성장시켰다.
셰릴 샌드버그는 미국에 여성 대통령이 나온다면 유력 후보 중 한 명이란 소리까지 듣는 인물이다. 경제학을 전공한 그녀는 세계은행과 재무부 등 공직과 컨설팅회사를 경험한 뒤 2001년 구글에 입사했는데, 이때의 스토리가 실리콘밸리의 전설로 남아 있다. 당시 능력 있는 샌드버그를 잡으려 한 회사는 여럿 있었다. 작은 벤처기업 구글이 제시한 조건은 대기업들보다 나빴다. 시기적으로도 1990년대 후반 화려했던 닷컴버블이 꺼져갈 때였다. 대기업에 마음이 끌렸던 샌드버그에게 당시 구글 CEO 에릭 슈밋은 “로켓에 올라타세요. 회사가 빠르게 성장하면 커리어는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로켓에 자리가 나면 그 자리가 어디인지 따지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샌드버그는 구글이라는 로켓에 올라탔고, 엄청난 성장을 경험한다.
7년 뒤 구글을 떠나기로 마음먹자 많은 회사들이 고액 연봉의 CEO직을 제의했지만 샌드버그는 23세 청년이 CEO로 있는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한다. 적자 기업이지만 CEO 마크 저커버그가 그리는 미래에 베팅한 것이다. 사업 경험이 부족한 저커버그에게 샌드버그는 ‘큰누나’ 같은 존재가 됐고 회사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너무 잘나가는 여성들의 사례라 남의 일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한번 직업을 선택할 때는 적어도 10년 뒤는 내다봐야 한다. 세상 변화의 큰 흐름을 잘 읽으면서 현재보다는 미래가 좋아 보이는 영역을 고르라는 얘기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고, 뭔지 모를 기회가 다가올 확률 또한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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